재위 284∼298. 『삼국사기』의 주(註)에서는 『고기(古記)』를 인용해 제3대와 제14대 두 임금의 이름이 유리(儒理) 혹은 유례(儒禮)로 똑같다고 하였다.
이른바 신라 상고(上古) 왕위계승의 허구론(虛構論)에 의하면, 눌지(訥祗)와 위의 두 왕은 왕명(王名)이 같아 ‘늙〔老〕’의 의미를 가진 역사시대의 눌지가 상대(上代)로 투사되어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이들 셋은 ‘누리〔世·享·繼〕’의 뜻을 지녔고 박·석·김의 3성에 각각 이러한 이름을 가진 왕이 병립했던 것을 하나의 계보로 만들어버린 결과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라 상고의 기사를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유례이사금은 제11대 조분이사금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이씨갈문왕(葛文王) 내음(奈音)의 딸 □소부인(□召夫人)인데 별빛이 입 속으로 들어와 잉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런데 조분이사금의 비는 내해이사금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므로 조분이사금의 비가 둘일 리 없어, 조분이사금은 유례이사금의 할아버지라는 설도 있다. 선왕 미추가 네 명의 석씨왕에 이어 조분이사금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으므로 왕위는 다시 석씨인 유례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유례이사금의 비는 알 수 없다.
왜병이 일례군(一禮郡)·사도성(沙道城 :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장봉성(長峰城) 등을 공격하자 왕은 백제군과 연합해 왜에 원정하려 했으나, 서불한(舒佛邯) 홍권(弘權)의 만류로 그만두었다고 한다. 293년사도성을 개축하고 사벌주(沙伐州 :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의 호민 80여 가를 옮겼다. 297년이서고국(伊西故國 :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을 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