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공(子恭), 호는 겸산(兼山). 단양 출생. 아버지는 의정부우참찬 유명웅(兪命雄)이며,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인천부사 조현기(趙顯期)의 딸이다. 김창흡(金昌翕)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여 헛되이 말을 하지 아니하고 행동을 엄격히 자제하여 어른을 잘 섬겼으며, 스스로 학업에 힘써서 1715년(숙종 41)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다. 한때 송산(松山)에서 성리서(性理書)에 전념하였으며, 교하(交河)의 매음(梅陰)으로 이거한 뒤 원근의 선비들을 가르쳤다.
1733년 명릉참봉(明陵參奉)으로 벼슬길에 들어가 효릉참봉(孝陵參奉)·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를 거쳐 금구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그 뒤 임피현령(臨陂縣令)과 전주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소학』과 경서(經書)를 매일 정독하며 이론과 실천의 부합에 힘썼다. 「태극도설차의(太極圖說箚疑)」·「중용차의(中庸箚疑)」·「서경차의(書經箚疑)」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겸산집(兼山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