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희원(希元)이다. 아버지는 첨의중찬(僉議中贊) 유경(柳璥)이며, 어머니는 평양군부인(平壤郡夫人) 단양장씨(丹陽張氏)로 낭장(郎將) 장세의(張世儀)의 딸이다. 부인은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홍진(洪縉)의 딸이다.
통례문(通禮門)에 오래 있으면서 당시 없어진 예문을 모아 조회(朝會)의 의례에 자세한 해설을 붙인 『신의(新儀)』를 편찬하였다. 1269년(원종 10) 임연(林衍)이 정치적 실권을 잡자 아버지가 흑산도로 유배되고 유승도 연좌되어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
1287년(충렬 13) 2월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고, 1291년 9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판삼사사(判三司事) 한희유(韓希愈)와 함께 강화의 진(鎭)에 머무르면서 병란으로 피해를 입은 고을의 조세를 감면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듬해 윤6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고, 1294년 7월 직사관(直史館) 권한공(權漢功)과 함께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정월 지밀직사사를 거쳐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에 이르렀고, 1298년(충선 즉위년) 5월 세상을 떠났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관직에 있을 때 성실함이 있었고,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시호는 정신(貞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