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양보(良甫), 호는 자락헌(自樂軒)·무수옹(無愁翁). 예조판서 유성증(兪省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유철(兪㯙)이다. 아버지는 목사 유명건(兪命健)이며, 어머니는 안후선(安後宣)의 딸이다.
1715년(숙종 41) 사마시를 거쳐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당시 당쟁이 치열하여 세상이 어지러우므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다가, 1726년(영조 2) 설서(說書)가 되었다.
이듬해 정미환국 때 소론의 거두 이광좌(李光佐)의 횡포에 분개하여 소를 올려 탄핵하다가 삭출당하였다. 3년 후 지평으로 다시 등용되자, 신임사화로 죽은 노론의 거두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의 신원(伸寃)과 소론의 음모사실을 논박하다가 다시 삭출당하였다.
곧 등용되어 부교리·부수찬을 거쳐 수찬·시독관(侍讀官) 등을 역임하고, 1747년 병조참의에 올랐다. 또 노론의 여러 언관들과 함께 신임사화의 전말을 상소하고 소론의 거두인 이광좌의 관작추탈을 강력히 주장하다가, 탕평책에 역행하는 자라고 지목되어 웅천현감으로 좌천되었다.
영조가 유최기의 강직함을 가상히 여겨 다시 기용함으로써 그뒤 동부승지·대사성·대사헌·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63년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오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뒤에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참찬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