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군열(君悅), 호는 청고(靑皐). 윤선도(尹善道)의 후손 두서(斗緖)의 손자이며, 덕희(德熙)의 차남이다. 1735(영조 11)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할아버지 두서와 아버지 덕희로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이어받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33세로 요절하였다.
술을 좋아하였으며 기품이 있고 맑은 성격에 용모가 수려하였다 한다. 그림은 집안의 가풍을 계승한 흔적이 역력하며 또한 화조나 나비·잠자리 등의 초충도(草虫圖)에서도 대상의 미세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살핀 다음 꼭 같도록 그렸다는 정약용(丁若鏞)의 화평이 전한다.
산수화는 가법(家法)으로 정착된 남종화풍(南宗畫風)을 따랐고 풍속화에서는 할아버지의 회화세계를 연상하게 하는 「채애도(採艾圖)」(간송미술관 소장) 등을 남겼다. 이 밖에 유작으로 「수하필서도(樹下筆書圖)」(海南宗家 소장)·「홍각춘망도(紅閣春望圖)」(간송미술관 소장)·「연강우색도(煙江雨色圖)」(개인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