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일지(一之), 호는 경림(敬林). 아버지는 참봉 윤강(尹綱)이고, 어머니는 광산이씨(光山李氏)로 판결사 이변(李邊)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고 여러 차례에 걸친 향천(鄕薦)이 있었으나 오직 제가(齊家)에만 힘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의(白衣)로서 창의(倡義)하여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인 계부(季父) 윤신(尹紳), 종제 윤동철(尹東喆)과 더불어 가동(家僮) 수십 명과 의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태안 일대의 왜적을 크게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중부(仲父) 윤윤(尹綸), 계부 윤신, 종제 윤동철과 다시 의병을 일으켜 해남군 옥천면 성산리 대교야(大橋野)에서 어란진(於蘭鎭)에서부터 추격하여온 왜적과 대항하여 싸우다가 네 사람이 다같이 전사하였다. 강진군 화암사(花巖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경림유고(敬林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