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높이 110㎝. 1981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은적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었고, 강진무위사, 해남미황사, 대흥사 등의 큰집이라고 하나 확인하기 어렵다.
또한 이곳 바로 옆 계곡에 다보사(多寶寺)라는 큰 가람이 있어 은적사가 이 절의 부속 암자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다고 한다. 은적사는 『범우고(梵宇攷)』에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고 하여 그 위치만 나오며 그에 앞서 약사전에 철불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1883년에 작성된 「은적사사적기(隱蹟寺事蹟記)」에 철불에 대한 기록이 간략히 나온다. 은적사 철불은 하체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다행히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에서 복부까지는 비교적 원형을 잃지 않고 잘 남아 있다. 파손된 부분은 최근에 나무로 복원하였으나 비례가 맞지 않다.
상호는 대체적으로 원만상이나 양쪽 볼에 살이 약간 빠져 있어 자비스러운 인상은 약하다. 머리는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며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는 작고 낮아 머리와 구분하기 어렵다.
이마는 좁으며 중앙에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있다. 눈은 반개하여 거의 일자형을 이루고 있다. 호형의 눈썹이 눈 밑 부분까지 내려와 특이하다. 콧날은 오뚝하다. 턱 밑에는 1조선의 음각선이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서 어깨에 거의 닿고 있으며 귓불 부분이 금동불처럼 관통되어 있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다. 오른쪽 어깨에서 복부로 내려간 의문(衣文 : 옷자락 무늬)은 거의 수직을 이루고 왼쪽 어깨에서 내려간 의문은 직선을 이루다가 복부에서 사선이 되어 오른쪽으로 흐른다.
겨드랑이 의문은 U자형의 3선이 반복되어 있다. 승각기는 가슴 위까지 올라와 있는데 일직선으로 평행을 이루며 띠 매듭이 없는 형식으로 보림사철불과 일치하고 있다. 수인은 지권인을 결하고 있다.
통례와는 반대로 왼손이 위로 올라가 오른손의 집게손가락 첫째 마디를 잡고 있다. 이 불상은 양쪽 어깨가 당당하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단아한 상호를 보이는 통일신라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