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전씨(田氏), 법호(法號)는 수월(水月). 충청남도 홍성 출신.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성장하였고, 출가 전에는 머슴살이로 생계를 이었다. 어느 주1의 법문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여 1883년 29세의 나이로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경허(鏡虛)의 친형인 태허 성원(太虛 性圓)을 주2로 출가하였다. 그는 글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출가 후에도 주로 땔나무를 해오는 주3과 주4 소임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전을 들으면 모두 외웠고, 바쁜 일과 속에서도 항상 주5를 암송하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887년 그는 성원으로부터 주6를 받고 ‘음관’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와 관련한 일화가 전한다. 성원이 길을 가는데 물이 세차게 떨어지는데도 주7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음관이 방아통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었고, 깜짝 놀라 음관을 끌어내니 방앗공이가 다시 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고나서 음관은 사미계를 받았다. 그리고 어느 날 밤낮없이 주8만 외우는 수행을 7일 동안 하게 되었는데, 그때 천수삼매(千手三昧)를 주9 무엇이든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불망념지(不忘念智)를 얻게 되었고, 사람의 병을 고쳐 주는 신통력을 얻었다고 한다.
한편 ‘수월’이라는 이름은 경허선사로부터 받은 주10이다. 경허의 법을 이은 제자로 흔히 ‘경허의 세 달’이라는 표현으로서 수월, 혜월(慧月), 만공(滿空)을 일컫는데, 이들은 모두 천진암에서 만나 수행을 시작했다. 음관은 이후 스승인 경허의 행방을 찾아다니면서도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주11을 실천해 나갔다.
오대산의 상원사(上院寺)에서 한암(漢巖)과 함께 정진하다가, 서울을 거쳐 평안북도 영변 묘향산 중비로암(中毘盧庵)에서 3년 동안 머물렀다. 다시 평안북도 강계 천녕산(天寧山) 자조사(子兆寺)를 거쳐, 백두산 밑의 한 농가에서 또 3년을 머물렀다. 이 때 백두산을 넘나드는 길손들에게 짚신과 점심을 제공하는 등 많은 보살행을 쌓았다고 한다. 그 뒤 간도 지방의 동녕현에서 6년 동안 머물렀는데 이곳에까지 사람들이 찾아왔으므로 다시 강청현(江淸縣)으로 가서 화엄사(華嚴寺)를 짓고 8년 동안 머무르다가 1923년 7월 16일에 주12.
입적을 한 날부터 7일 동안 주13이 있었고 다비(茶毘)를 한 뒤에도 많은 사리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평생 한 글자의 문자도 남기지 않았으므로 그의 사상을 살필 자료가 없다.
또한, 평생을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하여 숨어 살았으므로 전기도 뚜렷이 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그를 높이 평가하며, 주14 뒤에도 조금도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천수삼매를 얻은 뒤 평생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한 주15의 숨은 도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