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14교구 본사(本寺)인 범어사(梵魚寺)의 주1이다. 주2은 이명산이라고도 한다. 사찰이 자리한 일대는 봉명산 시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503년(지증왕 4)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영악사’라 하였고,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법사(慈藏法師)가 건물 2동을 신축하고 ‘타솔사(陀率寺)’로 개칭하였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영봉사(靈鳳寺)’라고 고쳐 부른 뒤, 신라 말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고 다시 영악사라 불렸다.
1326년(충숙왕 13)에 나옹 혜근(懶翁 惠勤)이 주3,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주4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686년(숙종 12)에 영일(靈日)・혜능(惠能) 등이 주5 복원하였다. 1748년(영조 24), 주6 대부분이 소실되자, 월징(越徵)・일진(日眞) 등의 주7으로 불사를 시작하여 1758년, 명부전(冥府殿) · 사천왕문(四天王門) · 대양루(大陽樓) 등을 중건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화재를 입었고, 정조 대에 팔상전(捌相殿)의 중수를 비롯하여 일부를 복원하면서 다솔사로 고쳐 불렀다. 현재의 건물은 대양루를 제외하고 1914년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후 재건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74년에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현, 유형 문화유산)로 지정된 대양루를 비롯하여, 1985년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현, 문화 유산 자료)로 지정된 극락전(極樂殿)과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그밖에 대웅전(大雄殿) · 나한전(羅漢殿) · 천왕전(天王殿) · 주8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대양루는 1758년(영조 34)에 지은 앞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2층 주9으로 맞배지붕을 받치고 있다. 다솔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건물이며 적멸보궁(寂滅寶宮)과 마주하고 있다. 최근에는 1986년에 수리하였으며, 2000년 1월에 다시 보수하였다.
1978년 2월 8일에 있었던 대웅전 삼존불상 주10 때 108개의 사리(舍利)가 발견되자, 대웅전을 주11 적멸보궁을 짓고 뒤편에 적멸보궁 사리탑(寂滅寶宮 舍利塔)을 건립하였다.
이 밖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멸이 심한 주12과 1972년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현, 유형 문화유산)로 지정된 보안암 석굴(普安庵 石窟), 부도군(浮屠群) 등이 있다.
보안암 석굴은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경주 석굴암 석굴(慶州 石窟庵 石窟)의 형태와 비슷하다. 석굴 안의 주13인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은 코 부분이 깨어져 있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여 1.3m 내외의 석불 좌상 16구가 안치되어 있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부도군에는 도명(道明) · 낙화(樂華) · 성진(聖眞) · 풍운(風雲) · 세진(洗塵) 등 5인의 부도(浮屠)가 있다. 이 밖에도 절 주위에서 재배되는 주14는 반야로(般若露)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명차이다.
최범술은 1928년부터 1976년까지 다솔사 주15를 역임했다. 그는 1930년대 불교 청년의 비밀 결사체였던 만당(卍黨)의 당원이기도 했다. 만당이 해체된 이후, 허영호, 김법린 등이 다솔사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불교 청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한용운도 다솔사에 머물며 수도・정진하였고, 회갑 잔치를 열기도 했다. 최범술은 불교 전문 강원(講院)과 광명학원(光明學院)을 설립하여 승려 및 인근 농민의 자제들을 위한 교육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불교 전문 강원에서는 최범술, 김법린, 김범부, 강고봉(姜高峯) 등이 강사로 활동했다. 김범부의 동생인 소설가 김동리는 광명학원의 강사로 있으면서 『등신불(等身佛)』을 탈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