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철종 12) 전라도 곡성에서 태어났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호는 금명(錦溟)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상종(相宗)이며, 어머니는 완산이씨(完山李氏)이다.
15세가 되던 1875년(고종 12)에 송광사의 금련 경원(金蓮敬圓)에게서 출가하고, 2년 뒤 경파(景坡)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당대의 종장(宗匠)을 찾아 다니며 교학을 전수 받았다. 30세가 되면서 경원의 법을 계승하여 개당하고 송광사, 화엄사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1898년부터 1904년까지 주6의 총섭(摠攝)을 역임했다. 총섭은 당시 주지의 별칭이다. 1899년 고종의 주1으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3부 인쇄되었을 때, 1부를 가지고 와서 송광사 장경전에 봉안하였다.
1910년대 이후로는 강원 및 학당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나갔다. 1914년 송광사의 보제당(普濟堂)에 강원을 설치하여 전통 불교 교육에 힘쓰는 한편, 주4에 세운 송명교당(松明敎堂)에서는 근대 교육 및 민족 교육을 병행하였다. 이 밖에 천은사, 대흥사, 태안사 등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후학 양성과 저술 활동에 매진하던 보정은 1930년 2월에 주5.
보정은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사적이나 불교사에 정통하여 『불조록찬송(佛祖錄讚頌)』・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석보약록(釋譜略錄)』・『향사열전(鄕史列傳)』과 같은 주7를 집성하였다. 이 외에도 『저역총보(著譯叢譜)』・『삼장법수(三藏法數)』・ 『백열록(栢悅錄)』・ 『대동영선(大東詠選)』 등 서책목록이나 개념사전, 시문 선집류도 편찬하였고, 『정토찬백영(淨土讚百詠)』・ 『염불요문과해(念佛要門科解)』 등 염불 관련 저서와 『십지경과(十地經科)』・『능엄경과도(楞嚴經科圖)』와 같은 주석(註釋)류도 있다. 이처럼 그의 저술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선과 교, 염불을 두루 섭렵하고 있으며,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였다.
무엇보다 『조계고승전』에서는 기존의 태고 법통설에 기반한 불교사 인식을 유지하면서도, 송광사와 보조 지눌의 유풍을 강조하고 그것을 부휴계(浮休系) 전통에 연결하면서 조계종(曹溪宗)을 표방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보정의 이러한 인식은 부휴계를 정통으로 보는 계파적 인식이 강한 것이었지만, 조선불교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역사성을 갖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통 창출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