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영은이 창건한 사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24교구 본사(本寺)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末寺)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중창(重創)되면서 영은사(靈隱寺)와 내장사로 병칭(竝稱)되다가 1938년의 중건(重建)으로부터 내장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립되었다. 특히 근대 학명 선사(鶴鳴 禪師, 1867~1929)가 사찰을 중수하고 자립 경제를 실천하면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전언(前言)에 의하면, 636년(무왕 37)에 영은 조사(祖師)가 창건하여 영은사라 하였다. 이때의 가람(伽藍) 규모는 50여 동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098년(숙종 3)에 행안(幸安)이 전각(殿閣)과 당우(堂宇)를 새로 건립하고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구체적인 역사 기록으로는 1468년(세조 14)에 정혜루(定慧樓)를 건립할 때 성임(成任, 1421~1484)이 쓴 「정혜루기」가 있다. 이 글에서는 영은사를 창건한 내용은 자세하지 않고, 단지 고려 말에 지엄(智嚴)이 “처음 머물렀다[始居].”라는 표현만 보인다. 그래서인지 근대 자료 중에는 고려 말에 지엄이 사찰을 창건했다고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 백제 승려인 영은이 창건하고, 고려시대에 행안과 지엄 등이 머물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내장산(內藏山)에 있는 사찰로 영은사와 함께, 백련사(白蓮寺) 또는 내장사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539년(중종 34)에는 내장산에서 승도탁란 사건(僧徒濁亂 事件)이 일어나자, 중종은 내장사와 영은사가 도둑의 소굴이라 하여 절을 소각시켰다. 이러한 사실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내장사와 영은사가 독립된 2개의 사찰이었음을 알려준다. 1557년(명종 12)에 희묵(希默)이 영은사의 자리에 법당(法堂)과 요사채(寮舍채)를 건립하고 절 이름을 내장사로 고쳤으나,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전소되었다.
1639년(인조 17)에 법당을 중수(重修)하고 불상을 개금(改金)하였으며, 1779년(정조 3)에 영운(映雲)이 대웅전(大雄殿)과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改築)하였다. 근대에 와서 1923년에 학명 계종이 절을 벽련암(碧蓮庵)의 위치로 옮겨 짓고 벽련사라 하였으며, 옛 절터에는 영은암을 두었다. 학명 선사는 1923년부터 입적한 1929년까지 주지(住持)로 있으면서 법당 및 선실(禪室)을 세우고, 반농반선(半農半禪)을 주창하여 이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사찰의 자립 경제를 추구하는 등 근대 이래 내장사의 기반을 닦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38년에 승려 매곡(梅谷)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冥府殿)과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영은사와 내장사 등으로 병칭되던 사찰은 이 시점부터 내장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립되었다.
1951년 1월 12일에 불탄 뒤로 중건하지 못하다가, 1957년에 요사인 해운당을 건립하였고, 1958년에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0년∼1962년과 1974년∼1977년에 중건하였고, 1992년에 요사인 향적원(香積院)과 종각(鐘閣)을 건립하였으며, 1997년에 해운당을 중건하였다. 2012년에 대웅전이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2015년에 중건하였지만, 2021년에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극락전(極樂殿) · 관음전(觀音殿) · 명부전 · 선원(禪院) · 정혜루 · 사천왕문(四天王門) · 일주문(一柱門) · 요사채 · 종각 등이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1974년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내장사 조선 동종(內藏寺 朝鮮 銅鐘)과 승탑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내장사의 조선 동종은 장흥 보림사(寶林寺)에 있던 것을 1890년(고종 27)에 영담(映曇)이 옮겨 온 것이다. 윤광형(尹光衡)과 조한보(趙漢寶)가 시주하여 1768년에 주조하였다는 명문이 종에 새겨져 있다. 높이 80㎝, 구경 50㎝의 중종이며, 용머리의 정교한 문양과 맑은 음향으로 조선시대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3년에 무기 제작을 위해 강제 징발되었다가 다시 찾았다고 한다.
부속 암자로는 벽련암 · 원적암(圓寂庵) · 불출암(佛出庵) · 정재암(淨齋庵) · 영은암(靈隱庵) · 월조암(月照庵) · 삼청암(三淸庵) · 금선암(金仙庵) · 은선암(隱仙庵) · 천진암(天眞庵) · 남산암(南山庵) · 용굴암(龍窟庵)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원적암과 영은암만이 남아 있다. 절 주위에는 빼어난 경치의 명승지(名勝地)가 많으며, 내장산 안에 있는 산성은 임진왜란 때 희묵이 제자 희천(希天)에게 쌓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