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산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사찰이 창건된 1650년 당시 조선 사회는 병자호란을 겪은 직후였고, 많은 이들이 포로로 주1에 끌려갔다가 일부만 살아돌아왔다. 이때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도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왔는데, 먼저 귀국한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자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랐다. 봉림대군의 부인 장씨, 즉 인선왕후(仁宣王后)는 청나라에 끌려갔을 때 죽은 아버지 장유(張維)의 명복을 빌기 위해 주2을 창건했는데, 그 사찰이 바로 법련사이다. 왕실 원당이었던 만큼 조선 후기에 사격을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 뒤 1927년에 주지 벽숭(碧崇)이 주3, 6·25 때 폭격으로 사찰의 절반이 파괴되었던 것을 1952년에 대은(大隱)이 중수하였으며, 1968년에 복만(福萬)이 무너지기 직전의 관음전을 개축하고 대웅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6년에는 비구니 도원(道圓)이 주4를 중수하였고, 1981년에는 장유의 후손인 장씨 집안에서 철조 석가여래 좌상을 만들어서 봉안하였다.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여래 좌상을 비롯하여 주5 · 신중탱화(神衆幀畵) · 주6 · 독성탱화 · 주7 등이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