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義寂)은 당나라에 유학을 가 현장(玄奘, 602-664)의 제자가 되어 유식학(唯識學) 연구에 몰두하였다. 종남산에 위치한 흥교사(興敎寺)에서 공부하기도 하였고, 현장이 당나라에 귀국한 645년 무렵에는 장안(長安: 현재 중국 산시성 시안시)에 있었다. 의적은 장안에서의 수학(受學)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의적은 69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라로 돌아왔으며, 이후 금산사(金山寺)에 주석(駐錫)하였다.
의적의 저서로는 『대반야경강요(大般若經綱要)』 1권, 『대반야경유찬(大般若經幽贊)』 1권, 『반야이취분경유찬(般若理趣分經幽贊)』 1권, 『금강반야경찬(金剛般若經贊)』 1권, 『법화경논술기(法華經論述記)』 2권, 『법화경강목(法華經綱目)』 1권, 『법화경요간(法華經料簡)』 1권, 『법화영험기(法華靈驗記)』 3권, 『열반경강목(涅槃經綱目)』 2권, 『열반경소(涅槃經疏)』 16권, 『열반경의기(涅槃經義記)』 5권, 『열반경운하게(涅槃經云何偈)』 1권, 『무량수경소(無量壽經疏)』 3권이 있다. 그리고 『무량수경술의기(無量壽經述義記)』 4권, 『관무량수경강요(觀無量壽經綱要)』 3권, 『관무량수경소(觀無量壽經疏)』 1권, 『미륵상생경요간(彌勒上生經料簡)』 1권, 『범망경문기(梵網經文記)』 2권,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 3권, 『백법론총술(百法論總述)』 3권, 『영락본업경소(瓔珞本業經疏)』 2권, 『성유식론미상결(成唯識論未詳決)』 3권, 『백법론주(百法論注)』 1권, 『마명생론소(馬鳴生論疏)』 1권, 『대승의림장(大乘義林章)』 12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현재 전하는 문헌으로는 『법화경집험기』, 『법화경논술기』 상권, 『범망경보살계본소』, 『무량수경술의기』 단간이 있다.
의적은 장안 불교계의 영향, 금산사 주석 후 백제 불교의 영향 등으로 『법화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법화경』은 죽은 후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공덕으로 구해줄 수 있고,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전쟁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의적이 법화영험담을 모아 찬술한 『법화경집험기』는 관음보살 등 존격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법화경』 자체의 공덕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같은 시기 중국의 영험담류와 비교하면 독송, 전독, 서사, 청문으로 구분한 분류 방식이 독특하다. .
『법화경론술기』를 보면, 의적은 『화엄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고, 의상이 소개한 화엄사상에 대해서도 주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현장(玄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고는 하지만 현장의 제자 자은(慈恩)과는 다른 견해를 지녔다. 의적은 『법화경론술기』에서 취적성문(趣寂聲聞)의 성불 가능성을 언급한다거나 진제(眞諦)의 삼법륜설(三法輪説)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자은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행과 관련해서는 자은의 견해를 많이 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유식론』이나 『유가사지론』 등의 유식 논서도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