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병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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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반라성지[半拉城址, 八連城址]에서 출토된 발해시대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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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반라성지[半拉城址, 八連城址]에서 출토된 발해시대의 불상.
내용

높이 29㎝.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발해의 동경(東京) 용원부(龍原府) 유지에서 발견된 이 불상은 현재 남아 있는 발해 이불병좌상 중에서 그 형태가 가장 완전한 상이다. 응회암제(凝灰岩製)의 환조(丸彫 : 한 덩어리의 재료에서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 내는 일)로 부드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불병좌상이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견보답품(見寶塔品)」의 내용 중 석가불(釋迦佛)이 다보불(多寶佛)과 다보탑(多寶塔) 안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도상화한 불상이다. 중국에서는 북위(北魏)시대 이후 활발하게 조성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황룡사지(皇龍寺址) 출토 금동이불병좌상과 전 대전사지(傳大典寺址) 출토의 청동이불병좌상 그리고 고려시대의 괴산 마애이불병좌상과 같은 몇 예만이 남아 있다. 유독 발해에서도 동경용원부 유지에서만 8구 이상이 출토된 것은 이 지역의 불교 사상적 특색이 불상 조성에 영향을 끼친 결과라 생각된다.

2불은 하대를 결실한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 대좌 위에 나란히 앉아 있고, 그 양옆으로 2구의 협시가 서 있다. 불상 뒤로는 커다란 주형 광배 2개가 서로 붙어 있듯이 표현되었다. 상부에는 연화화생(蓮花化生)하는 5구의 화불(化佛)이 있다. 화불의 얼굴은 순진한 동자같이 부드럽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연꽃은 숙련된 솜씨로 양감이 있으면서도 날카롭게 조각하였다.

2구의 본존은 중판(重瓣) 연꽃무늬로 된 각각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을 가지고 있다. 안쪽의 연잎은 8엽으로 되어 있으나 바깥쪽 것은 16엽 이상의 좁고 날카로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 2개의 두광은 세부 표현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두 불상이 서로 다른 존격(尊格)을 띠고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견해도 있다.

좌불(左佛, 向右)은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는 크고 둥글다. 머리는 소발(素髮 : 민머리)인데 이마 가운데에서 좌우로 갈라져 있다. 얼굴은 약간 길지만 통통한 달걀형이다. 가는 눈과 길쭉한 코, 미소 띤 작은 입이 얼굴의 중앙에 모아져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다.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 안으로 깃이 X자형으로 교차된 내의(內衣)와 그 내의를 묶은 것으로 보이는 작은 띠 매듭이 보인다. 대의의 깃은 가슴을 크게 열어 U자형을 그리며 대좌 밑으로 내려와 상현좌(裳懸座 : 불상의 옷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를 만들었다.

끝단은 무릎 위에 얹어 놓은 왼쪽 팔뚝 위로 넘기고 있다. 그리고 두 발은 흘러내린 옷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옷이 두껍게 표현되어 신체의 굴곡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양손은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다. 오른손은 우불(右佛, 向左)의 왼손 위에 겹쳐 놓여 있다. 이러한 표현은 다른 지역의 불상에서는 보기 힘든 발해 이불병좌상만의 독특한 수인이다.

우불은 얼굴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좌불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다만 가슴에 보이는 내의의 표현이 다를 뿐이다. 내의가 역Y자형으로 되어 있고 띠 매듭은 보이지 않는다. 이 상에는 2구의 협시가 모두 남아 있다. 좌협시는 보살형이고 우협시는 승려형이다.

보살형의 협시는 계발이 높고 보관(寶冠)이나 관대(冠帶 : 관의 띠) 같은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귀는 크며 얼굴의 세부 모습은 본존과 같다. 두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데 아마도 정병(淨甁)인 것 같다. 옷깃은 가슴에서 배에 걸쳐 V자형을 이루고 있다. 양쪽 팔에 걸친 천의(天衣 : 천인(天人)이나 선녀의 옷)는 무릎 앞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고 있어 고식(古式)의 상임을 알 수 있다.

우협시인 승려형상은 민머리이고 귀가 길다. 코는 손상되었으나 미소 띤 입 모양과 전체적으로 다소곳한 분위기는 동자승을 연상케 한다. 이와 같이 이불병좌상의 협시로서 승려형 상과 보살상이 1구씩 배치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러한 배치는 수인이나 광배의 형식과 더불어 발해 이불병좌상과 중국의 이불병좌상을 구별시켜 주는 가장 큰 도상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불상은 날카로운 광배와 양감 있는 연꽃의 표현 등 여러 면에서 연가(延嘉)7년명불상이나 평안남도 평원군 원오리(元五里) 출토 소조불상 같은 고구려 불상 조각의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제작 시기는 반라성지 발굴 당시의 동반 유물과 고구려의 영향이 발해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된 점 그리고 발해 조각 특유의 보수성 등을 감안한다면 발해의 건국 초기, 즉 7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발해 반납성출토(半拉城出土)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의 연구」(임석규, 『불교미술연구』 2, 불교미술문화재연구소, 1995)
「半拉城出土の二佛竝坐像とその歷史的意義」(三上次男, 『高句麗と渤海』, 吉川弘文館,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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