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안(淸安). 자는 성안(性安), 호는 구암(懼庵) 또는 두항거사(杜巷居士). 아버지는 동도팔사(東都八士)의 한 사람인 이위현(李渭賢)이며, 어머니는 영월신씨(寧越辛氏)로 신명상(辛命相)의 딸이다.
가학(家學)을 이어받았고, 경사자집(經史子集)을 망라한 많은 서적을 박람(博覽)하였으며, 특히 『대학』과 『중용』을 탐독하였다. 항상 이황(李滉)의 『성학십도 聖學十圖』와 「사칠논변(四七論辨)」, 이언적(李彦迪)의 「태극변(太極辨)」 등을 깊이 연구하였다.
이수인은 일찍이 공명에 대한 뜻을 버리고 독서와 의리의 독행에 힘썼으며, 중년에 「자경설 自警說」과 잠(箴) 50여편을 지어 일생 동안 스스로를 책려하며 살았다. 1796년(정조 20) 경상도관찰사가 학행으로 천거하여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에 임명되었다.
강연(講筵)에서 왕과 시폐(時弊)를 논하고 성경(誠敬)을 근본으로 한 절용애민(節用愛民)을 건의하였다. 1818년(순조 18)에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작호가 내려졌다. 저서로는 『구암문집(懼庵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