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 때 밀직부사가 되었다. 1339년(충숙 복위 8) 8월 충숙왕이 죽은 뒤 충혜왕에게 강간을 당한 경화공주(慶華公主: 충숙왕 비)가 창피하여 원나라로 가기 위하여 말을 구하려 하였다. 이 때 충혜왕이 이엄(李儼)과 윤계종(尹繼宗) 등에게 명하여 마시(馬市)를 금하여 공주가 말을 구하지 못하게 하였다.
1340년(충혜 복위 1) 정월 충혜왕이 원나라 형부(刑部)에 구금될 때 폐신으로서 김인연(金仁沇)·한종유(韓宗愈)·이몽가(李蒙哥) 등과 투옥되었다가 풀려났으며, 1342년 6월 조적(曺頔)의 난 때 충혜왕을 시종한 공으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수성양절보리공신(輸誠亮節輔理功臣)에 봉해졌고, 1346년(충목 2) 5월 연안군(延安君)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