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이 일어나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서 이자겸의 군사들을 타일러 무장을 해제하게 하였다. 1127년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금나라에 파견되어 천청절(天淸節)을 축하하였다.
1135년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키자 직문하성(直門下省)의 좌상시(左常侍)로서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지저(李之氐)와 함께 상소를 올려, 묘청·백수한(白壽翰) 등은 모두 요인(妖人)들로서 그들의 말은 괴이하고 헛되어 믿을 수 없으며, 그로 인하여 임금은 정인(正人)과 직사(直士)를 원수처럼 미워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제거해달라고 맹렬히 비난하였다.
또한, 문공인(文公仁)·임경청(林景淸) 등이 묘청의 당파임을 역설하는 상소를 올려 그들을 관직에서 떠나게 하였다.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공부상서 지제고(工部尙書知制誥)·동지추밀원사를 지냈다.
1138년 이부상서 판어사대사(吏部尙書判御史臺事)·참지정사 판삼사사(參知政事判三司事)가 되었으며,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를 거쳐 1141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