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산(金山). 자는 병연(炳然), 호는 둔곡(遁谷) 또는 미산거사(嵋山居士). 아버지는 현감 이북상(李北相)이다. 과거공부를 외면하고 오직 자신을 위한 학문에 뜻을 두어 윤증(尹拯)에게 의탁하여 배웠다.
1737년(영조 13)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수되고, 1739년 광흥봉사(廣興奉事)로 옮겼으며, 1741년 희릉직장(禧陵直長)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와서별제(瓦署別提)를 거쳐 1743년 진보현감이 되었다.
임기를 끝내고 돌아올 때에는 책이 두어 묶음 있을 뿐 행리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뒤 광흥주부(廣興主簿)가 되었으나 늙어 관직에서 물러나 안성에서 은거하였다. 1756년 첨지중추부사에 배수되고, 기로사(耆老社)에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