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정숙(正叔), 호는 호봉(瓠峰). 이홍망(李弘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이철(李以哲)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의무(李宜茂)이며, 어머니는 박성렬(朴成烈)의 딸이다.
1666년(현종 7) 생원시를 거쳐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전적·지평·지제교·응교 등을 역임하고, 여러 주군의 수령을 지냈다. 1707년 판결사에 오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계되었으며,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어 그 해에 죽었다.
일찍부터 문명이 널리 알려져 그가 죽자 뛰어난 문인을 잃었다고 모두 애도하였다. 그는 시문 각체에 뛰어났으며 스스로 일가의 기축(機軸)을 이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