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점. 필사본. 세로 68㎝, 가로 43㎝.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394년 3월 27일에 국왕이 진충귀에게 가정대부 상의중추원사 도평의사사사 겸 의주등처도병마사 의주목사(嘉靖大夫商議中樞院事都評議使司使兼義州等處都兵馬使義州牧使)로 임명하는 사령왕지이다.
양질 저지(楮紙)에 총 5줄에 걸쳐 해서체로 쓰고 연월 위에 ‘朝鮮王寶(조선왕보)’라는 새보(璽寶 : 왕의 인장)가 찍혀 있다. 조선 초기의 왕지는 뒤에 교지(敎旨)로 그 명칭이 바뀌면서 새보도 바뀌는데, 사령교지에는 ‘施命之寶(시명지보)’를 사용하였다.
이 왕지는, 1395년 윤 9월에 발급된 진충귀 개국원종공신녹권(보물, 1993년 지정)과 함께 진씨문중(陳氏門中)에 보관, 소장되어오던 것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진충귀는 태조 2년 8월 14일에 첨절제사(僉節制使)로 양광도(楊廣道)에 파견되었으며, 태조 5년 12월에 중국에 파견, 이듬해(1397) 4월에 호조전서(戶曹典書) 양천식(楊天植)과 귀국한 사실이 있다.
이 왕지는 조선 태조 개국 초에 발급된 것으로 조선 초기 관제 및 사령서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새보 사용의 변천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 왕지의 명칭은 ‘진충귀의주목사왕지(陳忠貴義州牧使王旨)’로 하는 것이 보다 명확할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