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 때 내시(內侍)를 지냈으며, 인종 때 서경 출신의 승려 묘청(妙淸)이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지덕(知德)이 왕성한 서경으로 천도하여 나라를 중흥하자고 역설하자 이를 적극 지지하였다.
1128년(인종 6)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고 1129년에 형부상서 동지추밀원사(刑部尙書同知樞密院事)가 되었으며, 1130년에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가 되어 당시 묘청의 건의로 짓고 있던 대화궁(大華宮)의 역사를 감독하였다.
그 뒤 1133년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및 수사공(守司空)을 역임하였고, 1135년에 묘청이 서경천도의 실패로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그 당파로 지목되어 수사공 상서좌복야 추밀원사 판삼사사(守司空尙書左僕射樞密院事判三司事)로 치사(致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