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윤보(潤甫)·이호(彛好), 호는 노촌(老村). 아버지는 도사 임세공(林世恭)이며, 어머니는 이형생(李逈生)의 딸이다. 큰아버지 임세온(林世溫)에게 입양되었으며,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가까운 집안인 임영(林泳)의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갑과로 장원, 문학·수찬을 거쳐 1709년 남평현감(南平縣監)이 되었다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710년 이조정랑으로 사서를 겸하였으나 사직되었다가 다시 취임하였다. 뒤에 호당(湖堂) 응제(應製)에 수석하여 초모(貂帽)를 하사받았다.
홍문관교리를 거쳐 진산군수·능주목사(綾州牧使) 등을 역임, 대사간에 올랐으나 37세에 병사하였다. 경세(經世)의 뜻을 품고 당시의 제도와 시책들을 경장(更張)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많은 건의책을 내놓았으며,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성리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기울여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김응상(金應祥) 등이 있다. 저서로는 『동사회강(東史會綱)』·『노촌집(老村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