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장(士長). 이조전랑 임장(任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령 임선백(任善伯)이고, 아버지는 임양(任量)이며, 어머니는 권이량(權以亮)의 딸이다.
1687년(숙종 13)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1년에는 지평(持平)을 지냈으며, 1694년에는 필선(弼善)을 역임하였다. 1696년에는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1697년에는 수찬(修撰)·교리(校理)·보덕(輔德) 등을 역임하면서 이이(李珥)의 『동호문답(東湖問答)』을 모델로 삼아 시무책(時務策)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아울러 시비의 명확한 판단, 붕당 혁파, 곧은 기풍의 확장, 언로의 개방 등을 골자로 하는 소를 올렸다. 또 인사정책의 편협함, 기강 쇠퇴, 선비들의 풍속 투박, 백성의 곤궁, 왕명의 번복, 지방수령의 경솔한 행동, 서리의 속임수, 다수의 쓸데없는 군인, 힘든 양역(良役) 등의 폐해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듬해에는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의 실정을 살폈다. 1700년에는 승지·참찬관(參贊官)을 역임하였다. 그해 강원도관찰사와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특히 황해감사로 재직할 때에는 각 읍에 경대동(京大同)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줌과 동시에 관용(官用)의 약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1706년에는 대사간의 직책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