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장선함(張善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즙(張楫)이고, 아버지는 장진욱(張晉煜)이며, 어머니는 권탁(權琢)의 딸이다.
1785년(정조 9)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786년에는 지평(持平)·평구찰방(平丘察訪)을 역임한 뒤 1792년에는 정언(正言)을 지냈다. 1796년에는 장령(掌令)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성학(聖學)을 힘쓰고 세자를 교육시키며 백관을 감독하고 징토(徵討)를 엄격히 하며 언로를 개방하고 현사(賢邪: 현인과 사악한 인물)를 분별하며 백성들의 고통을 살펴야 한다는 등의 조목으로써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800년에는 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해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청나라에 다녀와서는 종실의 장친왕(莊親王)이 심양(審陽)의 행궁에서 대대로 건륭황제(乾隆皇帝)의 화상(畵像)을 봉안하고 있으며, 오반생(吳半生)의 잔당이 난을 일으키는 등 중국의 남부가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상황을 자세히 보고하였다.
그 해 가자(加資)되어 노비와 전결이 하사되었다. 1803년에는 대사간에 임명되어 호군(護軍) 최중규(崔重圭)의 상소 내용을 채택할 것과 성이연(成爾演)을 추증해줄 것을 주청하였으며, 채제공(蔡濟恭)을 성토한 심달한(沈達漢)을 탄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