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직(季直). 정광연(鄭光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흡(鄭潝), 아버지는 정민하(鄭敏河)이며, 어머니는 이운익(李雲翊)의 딸이다.
1753년(영조 2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0년에 지평(持平)에 재직하면서 『선원보략(璿源寶略)』을 개간(改刊)할 때 조태억(趙泰億)의 관작이 실려있음을 보고서 이것의 시정을 요구했다가 왕의 진노를 사서 처벌되었다. 1770년에는 집의(執義)·사간(司諫)을 역임하였다.
이듬해에는 보덕(輔德)을 지냈다. 1784년에는 부총관(副摠官)이 되었고, 1786년에는 가의대부(嘉義大夫)가 되어 도총관(都摠官)으로 승진하였다. 1788년에는 부사직(副司職)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이 후 공조판서까지 올랐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