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사수(士受). 임치(林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예(林藝)이고, 아버지는 임성헌(林聖憲)이며, 어머니는 한시대(韓始大)의 딸이다.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766년에는 정언(正言)·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770년에는 부수찬(副修撰)·수찬(修撰)·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이듬해에는 영남지역에 심리어사(審理御史)로 파견되어 그곳의 실정을 살피고서 사고로 사노비(寺奴婢)가 된 자는 감해주고, 잘못되어 사패노비(賜牌奴婢)가 된 자는 풀어줄 것을 주청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심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장령(掌令) 이만육(李萬育)에 의하여 탄핵받기도 하였다. 1772년에는 승지를 지냈으며, 1776년에는 대사간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