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문에 ‘상희(象戱)’라고 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의 문헌에 장기라는 말이 보인다.
이 장기는 바둑과 더불어 ‘기박(棋博)’이라 하며,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한가롭기만 하면 즐길 수 있는 진법(陣法)놀이이다.
장(將, 王 : 楚·漢)은 각 한 짝, 차(車)·포(包)·마(馬)·상(象)·사(士)는 각각 두 짝, 졸(卒, 兵)은 각 다섯 짝으로, 한쪽은 16짝이며, 양쪽을 합하여 32짝을 가로 10줄, 세로 9줄로 그려진 네모꼴의 장기판에 포진시켜 적의 장(왕)을 진퇴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승패를 결정하는, 추리와 연상(聯想)과 적수(敵手)의 심리를 이용하는 지능적 오락이다.
나무토막에 글씨를 쓰고 그것을 조각한 알[棋]로 적의 장(왕)을 꼼짝 못하게 포위하여 승패를 겨루는 까닭으로 그 명칭을 ‘장기’라고 붙였다 한다. 상희라는 이름은 장기의 발생기원이 코끼리를 숭앙하는 불교국인 인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코끼리는 몸집이 크고 행동도 느릿느릿 육중하며 믿음직스러우므로 잔재주를 잘 부리고 행동을 경솔히 하는 인간들도 이 코끼리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상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속설도 있다.
장기는 원래 인도의 승려들이 오랜 수도생활 중에 잠깐 쉬는 틈을 타서 행하던 놀이로서 그것이 중국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성행되었다 하며, 송나라 사마 광(司馬光)의 <상희도법 象戱圖法>을 보면 오늘날 우리 나라의 장기와 거의 비슷하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사용하는 장기는 후주(後周)의 무제(武帝, 951∼953)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우리 나라 장기의 역사는 고려 초로 거슬러 올라가 약 1,000여 년이 된다. 그것은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의 <예성강곡 禮成江曲>이나, ≪연려실기술≫ 같은 문헌에 장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장기는 인도→중국→한국→일본으로 전파된 것이 확실하다고 하겠다. 또, 미얀마의 고대 타리잉의 왕비가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인도는 고대 최고의 문명국이며, 이 놀이는 고도의 지능을 요하는 오락인 까닭에 장기는 인도에서 발명, 발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게 본다면 장기는 적어도 3,000∼4,000년 전에 인도에서 발명, 사용되었고, 그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한국적인 장기로 정착된 것으로서, 그 시기는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이 장기는 인도장기·중국장기·일본장기로 다소 다르게 고정되었고, 서양으로 퍼져간 것이 ‘체스’라고 하는 서양장기이다.
장기는 전쟁의 형식을 본 딴 놀이로서, 처음에는 대장기·중장기·소장기 등이 있었으나, 그 가운데 대장기·중장기는 없어지고 현재 쓰고 있는 소장기만 남았다고 한다(주로 우리 나라·중국·일본).
일반적인 놀이·싸움·전쟁에 있어서는 수(數)와 질(質)과 전투력이 승패를 좌우하지만, 장기는 동등한 수와 성능을 가지고 최선의 지능으로써 방어법과 공격법을 잘 활용, 발동시키면 승리를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오락경기이다.
장기는 자기편의 대장(장, 왕 : 한·초)을 상대편(敵手)의 공격에서 안전하게 방어하는 동시에, 상대편의 왕을 공격하여 그를 잡음으로써 승리하게 되므로 포진을 물샐틈없이 잘 하여야 된다.
장기의 포진법(布陣法)에는 원앙마포진·면상포진·귀마포진·양귀마포진·양귀상포진 등이 있어 각기 장단점이 있다. 초심자는 원앙마포진과 귀마포진법을 쓰는 것이 좋다.
원앙마포진법은 1마는 면포 앞에 나가고, 뒤편 마와 연관성을 맺도록 하는 것으로, 상대편의 농포(弄包)를 막으면서 중앙에 있는 마를 지원, 보호함으로써 자기편의 병졸을 진출시키는 일을 맡는다. 졸병대살(卒兵對殺)이 된 뒤에는 이 중앙마로써 적수의 면포를 비롯한 중앙포진을 흔들려는 태세를 취한다.
면상포진법은 상 하나가 중앙 면으로 나가는 포진으로, 졸을 중앙에 모아 상대편 면포의 위험을 막으면서 양 포로써 농 포를 위주로 하는 포진법이다. 짝(말 : 棋)의 기능과 진행법·공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차 : 동서남북 어디로든지 일직선으로만 다닌다. 그 선상에 적수의 말(짝)이 놓여 있으면 무엇이든 잡아먹을 수 있다. ② 포 : 포는 선을 따라 움직이되, 반드시 말 하나를 넘어서 다닐 수 있다. 자기 말이든 적수의 말이든 상관없으나, 같은 포끼리는 넘을 수 없다.
③ 마 : 마는 반드시 날일(日)자 모양으로 선 한 칸 다음에는 사선으로 한 칸만 가게 된다. ④ 상 : 상은 마의 가는 형태에서 사선 한 칸을 더 가야 한다. ⑤ 졸(병) : 졸 또는 병은 임전무퇴의 정신을 받들어 한 줄씩 앞으로 가거나 옆으로만 갈 수 있다. 한 칸 나아가면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
⑥ 사 : 사는 궁(宮, 城) 안쪽에서 항상 장(왕)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기 때문에 팔방의 궁 안에서만 선을 따라 한 칸씩 움직일 수 있다. ⑦ 장(왕) : 장의 움직이는 방법은 사와 같은데, 항상 적수의 길점을 피하여야 된다. 그 길점에 놓이면 적수의 ‘장군’ 소리와 아울러 먹히고 패전의 고배를 받게 된다.
그런데 장과 사를 제외한 모든 말은 상대편 장을 향하여 공격할 수 있으며, 움직이는 길점에 놓이면 잡아먹을 수 있으나 길목에 다른 말이 있으면 갈 수 없는 것이다.
또, 청홍 글씨 중 상수(上手, 高手)가 홍, 하수(下手, 後手)가 청을 가지고 두는 것이 상례이다. 서로 수를 모를 때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상수, 나이 적은 사람이 하수로서 대진한다.
장기는 두 사람이 대진, 서로의 두뇌를 최고도로 짜내어 둔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 장기판 둘레에는 구경꾼들이 있어 어느 한 편에 훈수를 한다. 이 훈수로 말미암아 큰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있어 장기판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동구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 삼복더위도 아랑곳없이 “장이야!”, “군이야!”, “장군이야!”, “멍군이야!” 하며 해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촌로들의 멋과, 할아버지와 손주가 장기를 두다가 할아버지의 속임 장기에 화가 난 손주의 손에 할아버지의 탐스러운 수염이 잡혀 “아야야! 이놈, 할아버지의 수염 다 뽑히네······.” 하고 비명을 올리는 정경 속에서, 그리고 사랑방에서, 정자 밑에서, 거리에서, 상점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장기판을 벌여놓고 노는 모습과, 다급한 일, 중요한 일을 잊은 채 장기삼매경에 들어가는 모습에서 한국적인 멋과 민속적인 풍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