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86㎝. 197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계맹(李繼孟)이 1484년(성종 15)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 148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후 광국공신(匡國功臣)이 되자 종중이 하사한 석등으로,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석등과는 매우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의 한 변 길이가 79㎝로, 지대석은 묻혀 있고 옥개석과 간주석(竿柱石)만을 볼 수 있는데 간주석과 화사석(火舍石 : 점등하는 부분)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4각형의 간주석은 옥개석의 크기에 비해 짧으며, 중앙 부분은 잘록하게 만들어졌다.
맨 밑에 좌대석 하단 4면에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는 화판(花瓣)을 조각하였는데, 잘록한 중석의 4면에도 역시 안상을 넣었다. 화사석의 네 면에는 화창(火窓)을 두었고, 옥개석은 일반적인 석등 형식과는 달리 4면에 같은 형식으로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였으며, 반전(反轉)이 심하고 처마 밑은 수평이 아니라 전각(轉角)을 따라 치켜올렸다.
옥개석 위에는 연봉오리형의 보주(寶珠)가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이 석등의 전체적인 형식은 간주석에 비해 옥개석이 지나치게 커서 둔중한 감을 주고 있는데, 조선 중기의 석등으로 알려진 전북특별자치도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에 있는 윤문효공묘(尹文孝公墓) 앞에 있는 석등(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조선 중기의 석등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