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은 백제계의 이주씨족인 다베후비토[田邊史] 일족이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세운 사찰로 전해진다. 다베후비토 일족은, 9세기 무렵의 문헌인 『홍인사기(弘仁私記)』에 의하면, 닌토쿠왕[仁德王] 때 백제에서 건너간 사수미(思須美)와 화덕(和德)의 자손으로 되어 있다.
1971년 오사카부교육위원회의 발굴조사로 인하여 이 사찰이 동쪽과 서쪽에 각각 탑을 둔 가람배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탑은 전적(塼積)이며, 서탑이 와적(瓦積)임도 밝혀졌다. 특히, 그 중 전적의 탑기단은 우리나라 부여의 군수리 폐사지(廢寺址)의 것과 동일한 양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출토되는 기와들이 나라시대(奈良時代)의 전기에서 후기, 심지어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의 것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은 8세기에 건립되어 15세기 무렵까지 존속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현재 그 유적은 하루히신사[春日神社]의 경내에 있다. 즉, 신사의 사무소(社務所) 북쪽에 동서 양탑의 흔적이 있으며, 그 곳에서 다시 북쪽에는 금당(金堂)의 흔적도 남아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현재 신사 경내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1975년 일본의 국가지정 사적지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