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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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때 주조 · 유통이 시도된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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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전폐는 조선 세조 때 주조·유통이 시도된 화폐이다. 철로 만든 화살촉 모양의 화폐로 유엽전(柳葉箭)이라고도 한다. 평상시에는 화폐로 사용하고 유사시에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화폐이다. 태종과 세종이 추진한 저화(楮貨), 동전, 포화(布貨) 등 명목화폐 유통 정책이 실패하자 1464년에 세조가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어 주조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주조 발행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고 실물도 전해지지 않는다. 전폐 주조와 유통은 시대역행적인 조처였기 때문에 실제로 주조되어 유통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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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세조 때 주조 · 유통이 시도된 화폐.
내용

팔방통화(八方通貨) 또는 유엽전(柳葉箭)이라고도 한다. 촉의 길이는 1치 8푼, 경(莖)의 길이 1치 7푼, 전폐문(箭幣文)은 경단(莖端)의 양면에 ‘八方通貨’라 되어 있다. 교환비율은 전폐 한 개에 저화(楮貨) 세 매이며 소재는 철이었다.

태종세종은 국가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서 저화나 동전(銅錢) 등의 명목화폐를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화폐 유통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당시 사회 경제의 미숙성과 화폐 정책의 모순성 내지 불합리한 정책운용으로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화폐 정책의 실패를 수습, 보완할 목적에서 당시의 유통계를 지배하고 있던 물품화폐인 포(布)를 법화로 현실화, 즉 법제화했던 것이다. 이것 역시 실패해 당시의 화폐 유통 체제는 실용가치를 전제로 한 종래의 물품화폐 유통 체제로 환원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왕조가 이와 같은 국가의 화폐 정책 내지 유통계의 실정에 대응해 구상, 시도한 조처가 바로 전폐를 법화로 주조, 유통하는 문제였다. 1464년(세조 10) 8월에 세조는 조정의 여러 신하를 모아서 화폐 문제, 즉 포화(布貨) · 저화 및 전폐의 통용 문제를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 참석한 대다수의 조정 신하들은 법화로서 전폐를 주조, 유통하는 문제를 반대하였다. 그러나 세조는 조정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폐 통용을 결정하였다. 즉, 세조는 역대의 화폐 사용이 한결같지 않았다는 점과 전폐는 비록 옛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군국(軍國)에 유익하다면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폐는 평상시에는 화폐로서 사용하고 일단 유사시에는 무기의 일종인 화살촉으로서 사용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조가 전폐의 주조 · 유통을 적극 주장한 데는 그것이 화폐로서의 경제성뿐만 아니라 무기로서 실용화할 수 있다는 군사적 고려가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조 초에 여진족이 국경지대에 자주 침범해와서 왕의 국방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래서 세조 때에는 국가에서 수우각(水牛角)이나 전죽(箭竹) 등과 같은 활 만드는 재료를 확보하는데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조선 왕조는 화폐 정책과 군사 정책 등 양면적 고려에서 평상시에는 법화로 사용하고 유사시에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전폐를 주조하도록 1464년 11월에 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폐는 주조 명령이 내려진 뒤 곧 주조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1467년 9월에 내장전촉(內藏箭鏃)을 사섬시(司贍寺)에 내려서 그것을 견본으로 하여 전폐를 주조하게 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 해에 전폐가 주조되지 않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전폐의 주조 발행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록이 나오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실물이 전혀 전해오는 것이 없으므로 전폐의 주조 · 유통에 대한 전후 사실을 보다 자세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선 왕조가 전폐를 법화로서 주조, 유통하려 했던 사실을 통해서 대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조선 왕조가 전폐를 주조, 유통하려고 한 데는 저화나 동전에 비해 화폐의 가치를 그것의 실용성에서 찾으려는 화폐가치관이 보다 농후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폐를 주조, 유통하려 한 동기에는 화폐 정책 외적인 정책적 배려, 즉 군사정책적 고려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전폐와 같은 화폐를 주조, 유통하려 한 것은 화폐가치관이나 화폐 정책 운용면에서 볼 때 저화나 동전을 법화로 사용하려 했을 당시의 그것에 비해 퇴보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화폐의 실용성을 중요시한 전폐를 주조, 유통시키려 한 것은 곧 포화나 미곡 등 물품화폐 유통체제를 저화나 동전 등의 명목화폐제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의 일단으로 시도된 발전적인 것이 아니라, 전환시키려다 실패한데 대한 반동에서 취해진 퇴보적 조처로 해석되는 것이다.

전폐를 법화로 유통시키려 했던 15세기 중엽의 봉건 조선사회는 당시의 사회 경제 발전과정에서 볼 때, 저화나 동전과 같은 명목화폐제를 진통 없이 수용할 수 있을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종래의 실용성 위주의 전폐나 미포 등과 같은 물품화폐 제도를 저항없이 받아들일 만큼 사회 경제발전이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세조 때에 있었던 전폐 주조 유통 시도는 시대역행적인 조처였기 때문에 왕이 주조를 명하는 단계에 그쳤을 뿐이다. 그것이 실제로 주조, 유통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한국화폐소사(韓國貨幣小史)』(최호진, 서문문고, 1962)
『한국화폐전사(韓國貨幣全史)』(한국조폐공사, 1971)
『조선화폐고(朝鮮貨幣考)』(류자후, 이문사, 1974)
「조선후기화폐사연구」(원유한, 『한국연구총서』 29, 1975)
「조선전기화폐류통정책」(원유한, 『한국사론』 11, 1981)
「朝鮮貨幣の沿革」(津村勇, 『朝鮮彙報』 6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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