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초명은 방(霶). 자는 군흡(君洽), 호는 고암(顧菴). 옥천 출신. 아버지는 찰방 정유건(鄭惟謇)이며, 어머니는 옥천전씨(沃川全氏)로 관찰사 전팽령(全彭齡)의 딸이다.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학문이 성취되었으며, 정온(鄭蘊)·이호민(李好閔) 등과 교유를 맺고 학문을 강론하였다.
1579년(선조 1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15년(광해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성균관학유·전적·좌랑 등을 비롯하여 진해현감·경상도도사를 거쳐 1623년(인조 1) 춘추관기주관 겸 교리와 정랑·군자감정·판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조헌(趙憲)·이충범(李忠範)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군량미를 보급하였으며, 진해현감으로 있을 때에는 유학을 진흥시키고 농업을 권장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그 고을 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워 정립의 업적을 기리기도 하였다.
정묘호란 때에는 김장생(金長生)의 휘하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본군의 도유사가 되었고, 이어서 4개군의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동궁(東宮)을 전주까지 호종하였다. 문장이 뛰어났는데, 특히 사부(詞賦)에 능하였고, 태극·음양설·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인물성동이설(人物性同異說) 등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고암유고(顧菴遺稿)』 6권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