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곡의 하나. 1930년대 노악사들은 <정읍>을 ‘빗가락정읍[橫指井邑]’이라고 하였으며,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 <수제천 壽齊天>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많이 쓰고 있다. ≪대악후보 大樂後譜≫ 권7에 <동동 動動> 악보와 함께 <정읍> 악보가 전하고, 무고(舞鼓) 정재(呈才)의 반주로 쓰이며, 계면조라고 명기되어 있다.
예전에 진연(進宴: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 때마다 <보허자 步虛子>·<향당교주 鄕唐交奏> 등 같은 곡에 수많은 이름을 그때그때 임시로 지어 썼기 때문에 <수제천>이라는 곡명은 옳지 않다. 그 한 예를 들면, 1828년(순조 28) 자경전(慈慶殿) 진작(進爵:궁중 잔치 때 임금에게 술잔을 올리던 일)시 왕이 잔을 들 때 아뢰는 향당교주에 ‘수제천지곡(壽齊天之曲)’이라는 이름을 지어 부르는 등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악학궤범≫ 무고(舞鼓)에는 만기(慢機)·중기(中機)·급기(急機)의 세 틀[三機]형식으로 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정읍이기(井邑二機)라고 했는데, 이는 <정과정 鄭瓜亭> 삼기곡(三機曲), <진작 眞勺> 삼기(三機), <처용가>와 <만전춘>의 전강(前腔)·후강(後腔)·대엽(大葉), 또는 만조(慢調)·평조(平調)·삭조(數調) 등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곡은 4장으로 구성되고 1·2·3장은 6장단, 4장은 2장단이다. 2장은 1장의 반복이고, 3장은 1장과 2장보다 4도 위로 조 옮김하였으며, 4장은 원래의 조로 되돌아간 가락이다. <정읍>은 <삼현영산회상> 중 상영산(上靈山)과 같이 연음형식(連音形式)을 가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빗가락정읍은 ≪악학궤범≫ 권1 악조총의(樂調總義)와 현금조(玄琴條)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調)와 관계가 있다. 원래 우리 음악에는 평조와 계면조에 각각 7조가 있었는데, 빗가락[橫指:四指]은 세가락[三指] 다음, 즉 네번째 조로 세가락의 주음은 임종(林鐘)이고, 빗가락은 남려(南呂)가 주음이 된다. 현행 <정읍>은 남려(C)·태주(太簇, F)·고선(姑洗, G)·임종(Bb)의 4음계로 된 계면조이다.
<정읍사>라고도 한다. ≪고려사≫ 악지(樂志)의 향악정재(鄕樂呈才)인 무고에는 ‘諸妓歌井邑詞 鄕樂奏其曲’이라 하였고, ≪악학궤범≫ 향악정재 무고보(舞鼓譜)에는 ‘諸妓唱井邑詞’라 하여 다음과 같이 가사가 소개되어 있다.
전강(前腔)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소엽(小葉) 아으 다롱디리
후강(後腔) 全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ᄃᆞᄅᆞᆯ 디ᄃᆞ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과편(過篇) 어느이다 노코시라
김선조(金善調) 어긔야 내가논ᄃᆡ 졈그ᄅᆞᆯ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소엽(小葉) 아으 다롱디리
이와 같이 전강·후강·과편으로 구분되고, 만기·중기·급기의 세 틀로 된 연주법을 가지고 있다. 과편은 과편(過片)으로도 쓰는데, 환두(換頭)의 성격을 띤 것 같고, 김선조는 <한림별곡> 제6편에 나오는 ‘김선(金善) 비파(琵琶)’라고 한 비파의 명인 김선의 가락과 관계가 있을 듯하다.
다만, 후강에는 소엽에 해당하는 ‘아으 다롱디리’가 빠진 점이 주목되며, 국문학자들 사이에서는 ‘후강전(後腔全)’이라는 주장과 ‘후강 전(全)져재’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지만, 음악면에서는 후강의 용례는 있으나 후강전의 용례는 전혀 없으므로 ‘후강전져재’가 옳다고 본다.
또한, 이와 같이 세 틀로 된 음악적 형식은 삼국시대에는 있을 수 없고, 그러한 형식 또한 고려 중엽 이전으로 소급할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