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鼎賢, 972~1054)은 법명이고, 시호는 혜소국사(慧炤國師)이다. 정현은 972년(광종 23)에 경기도 안성군에서 출생하였다. 속성은 이씨(李氏)이고, 어머니는 김씨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안성 지역 토성(土姓)으로 이씨가 있고, 부모가 그를 갖기 위해 보라색 가사 1천 벌과 보현보살 불화 500점을 만들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정현은 안성의 유력 가문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980년(경종 5) 9세에 수원 광교사(光敎寺) 충회대사(忠會大師)에게 출가하였고, 994년(성종 13)에 안성 칠장사(漆長寺) 융철(融哲)의 문하로 옮겨 화엄종으로 출가했다. 이후 법상종으로 소속을 바꾸고 영통사(靈通寺) 계단(戒壇)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996년(성종 15) 미륵사(彌勒寺)에서 승과에 급제했다.
정현은 999년(목종 2)에 대사(大師)가 되었다. 1012년(현종 3) 무렵에는 법운사(法雲寺)와 속리산 아래 냇물에 각각 비둘기와 물고기를 방생하였다. 현종 대에 수좌(首座)로 승차했으며, 덕종이 즉위하자 오래된 우정(郵亭)을 보수하고, 왕명에 따라 법천사(法泉寺)에 머물렀다. 이후 승통(僧統)으로 임명되어 현화사(玄化寺)에 주석(駐錫)하였다. 1044년(정종 10)에는 광제사(廣濟寺) 앞에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1045년(정종 11) 삼각산에 사현사(沙峴寺)를 짓고 여행객들이 안전하게 다니고 묵을 수 있도록 하자 정종이 왕명을 내려 홍제원(弘濟院)과 서인관(棲仁館)이라는 편액(扁額)을 하사했다. 1046년(정종 12) 음력 정월, 왕명으로 내전에서 『금고경(金鼓經)』, 즉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의하였다. 1048년(문종 2)에는 문덕전(文德殿)에서 8권본 『금광명경』을 강론하며 설명하자 비가 내렸다. 1049년(문종 3)에는 봉은사에서 왕사(王師)로 책봉되었으며, 1054년(문종 8)에는 역시 봉은사에서 국사(國師)로 책봉되었다. 이후 하산소(下山所)인 칠장사로 돌아와서 머물다가 음력 11월 15일 문인들에게 임종계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나이 83세, 승랍 74세였다. 제자로는 영념(靈念), 인조(仁祚) 등 수십 명이 있다.
화엄종으로 출가했다가 법상종으로 이적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현은 유식학을 공부한 승려였다. 칠장사 융철의 문하에서 수학하던 시기에는 계율에 관심을 두고 율장(律藏)을 공부하였으며, 『금광명경(金光明經)』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현이 새와 물고기를 방생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고, 여행객을 위해 사찰을 운영한 것 등은 『금광명경』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 전기 법상종에는 『유가론』 외에도 다양한 사상적 조류가 있었음을 정현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다.
정현이 입적한 후 문종은 승관과 관리를 보내 칠장사 남쪽 언덕에 장사를 지내게 하였다. 또한 부의를 보내고 혜소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한편 김현(金顯)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게 하고 민상제(閔賞濟)로 하여금 글씨와 전액을 쓰게 한 뒤, 1060년(문종 14) 음력 7월 칠장사에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를 세웠다. 이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는 정현의 사상과 생애를 전하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