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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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단체
고려시대 불교의 한 종파.
내용 요약

유가종은 고려 시대 불교의 한 종파이다. 후에 자은종으로 통칭되었다. 신라 유가에는 법상유식학의 유가와 삼밀수행의 밀교유가가 있었다. 신라에서는 모두 종파로 성립되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 법상유가는 유가교문 또는 유가업이라 일컬어졌다. 밀교유가는 신인종이나 총지종 등의 종파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말이나 조선 초 문헌들에 유가유식계통의 종파이름으로 자은종만이 보인다. 유가종에 대한 기록으로 『동문선』에 ‘자유유가종로(玆有瑜伽宗老)’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유가종’은 유가업의 수좌였다가 승통이 된 자유(資裕)를 칭송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목차
정의
고려시대 불교의 한 종파.
내용

나중에 자은종(慈恩宗)이라 통칭되었다. 현존하는 문헌상으로는 유가종이라는 세 글자를 종파이름으로 쓴 사례를 보기가 어렵다.

단지, 유가종이라 쓰인 유일한 기록으로는 『동문선』의 유가업수좌자유위승통교서(瑜伽業首座資裕爲僧統敎書)에 ‘자유유가종로(玆有瑜伽宗老)’가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유가종이라는 말은 하나의 종파를 가리키는 독립된 명칭이 아니고, 당시 유가업의 수좌(首座)였다가 승통이 된 자유(資裕)를 칭송하여 높인 말로 쓰인 글로 보인다. 즉 ‘자유유가종로’는 ‘여기에 유가의 종로가 있다.’는 뜻이다.

이 밖에, 비록 종(宗)이라는 글자가 끝에 붙어있지는 않았어도 하나의 유가종파 또는 유가의 교학(敎學)과 학종(學宗)을 뜻하는 낱말이나 명칭을 문헌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고려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에는 ‘유가교문(瑜伽敎門)’이라는 말이 보이고, 금산사 혜덕왕사비(慧德王師碑)에는 ‘대유가업(大瑜伽業)’이 있으며, 동화사 홍진국존비(弘眞國尊碑)에는 ‘대유가(大瑜伽)’가 있다. 그 밖에 『동문선』에는 유가업수좌관고(瑜伽業首座官誥)가 들어 있다.

이들 교문이나 업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종파의 이름보다는 오히려 교학이나 학종의 뜻이 더 짙게 나타나 있다. 『삼국유사』에는 몇 군데에서 ‘유가’의 사례를 보이고 있다. 권4 의해(義解)의 현유가(賢瑜伽)에는 경덕왕 때의 고승으로 법상유식학(法相唯識學)의 대가였던 태현(太賢)을 ‘유가조대덕태현(瑜伽祖大德太賢)’이라 하였다.

즉, ‘유가의 조사(祖師)인 큰스님 태현’이라는 뜻이다. 유가의 조사란 곧 유가유식학의 선구적 대가를 뜻하는 말이므로, 그 글자 그대로 풀어서 유가종의 조사라고도 할 수가 있다.

『삼국유사』 권2 문호왕법민조(文虎王法敏條)에는 ‘유가명승(瑜伽明僧)’이라는 말이 보인다. 즉,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명랑법사(明郎法師)가 왕명으로 사천왕사(四天王寺)에서 문두루비밀지법(文豆婁秘密之法)을 행할 때 유가명승 12명으로써 집행하였는데 명랑 스스로 그 우두머리[上首]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가명승은 유가에 밝은 승려를 말한다.

그러나 이 유가는 앞에서 본 유가유식, 즉 유가교학의 유가와는 다르다. 글자는 다 같으되, 여기서의 유가는 삼밀유가(三密瑜伽)를 가리키는 것으로 밀교를 뜻한다. 그러므로 명랑을 포함한 유가명승 12명은 삼밀유가의 수행승, 즉 불교의 비밀법에 밝은 승려들이다.

또, 『삼국유사』 권3 흥법 원종흥법 염촉멸신(原宗興法厭觸滅身)에는 ‘유가제덕(瑜伽諸德)’이라는 글이 보인다. 이는 곧 ‘흥륜사 영수선사(興輪寺永秀禪師)’라는 글귀 밑에 “이때의 유가제덕을 모두 선사라 칭하였다(于時瑜伽諸德皆稱禪師).”라는 각주(脚註)에 있는 글이다.

즉, 신라 흥륜사의 영수 당시에는 유가의 대덕들을 모두 선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앞에서의 유가교학의 대가나 승려들을 선사라고 부르지는 않았으므로 여기에서 유가 또한 밀교유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라 말기에는 밀교승려를 선사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라에는 유가의 말뜻에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법상유식학의 유가이며, 또 한 가지는 삼밀수행의 밀교유가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신라에서는 종파로 성립되지 않았다. 단지, 법상유가계통과 밀교유가계통으로 구분되어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밀교의 유가계통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신인종(神印宗)이나 총지종(摠持宗) 등의 종파로 전개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법상의 유가계통은 유가교문 또는 유가업이라 일컬어졌다.

고려시대의 종파로서 유가종이라고 한다면 물론 삼밀유가계통이 아닌 법상유식계통의 유가교문 또는 유가업이 해당된다.

유가교문이나 유가업이란 법상유식학의 경론(經論) 중에서 중요한 논전(論典)인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이나 유가유식학의 앞머리에서 따온 명칭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가교문이나 유가업이라는 명칭은 법상교학이나 유식학종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당시의 종파명이 분명하게 기록된 문헌들에는 유가유식계통의 종파이름으로 자은종만이 보일 뿐이며, 유가종은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상
『동문선(東文選)』
「오교구산에 대하여」(김영태, 『불교학보』 16, 1979)
집필자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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