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은종(慈恩宗)은 당나라 승려 자은(慈恩, 632682)을 종조(宗祖)로 한 불교 종파이다. 자은은 천축(天竺)에 다녀온 뒤 당 태종의 후원을 받으며 『유가사지론』, 『성유식론』 등을 역경한 현장(602664)의 제자로, 자은기, 대승기, 규기 등으로 불렸다.
유식학 관련 경론을 편찬한 이자연의 아들 소현(韶顯, 10381096)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해린(海麟, 9841070)의 비문에 무착, 계현, 현장(玄奘), 자은 및 해동 6조를 조사로 기록하였다. 또한 현화사, 해안사, 법천사 외에도 진표계 사찰들을 자은종 사찰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소현의 노력으로 유식학을 전문으로 하는 교단이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해동 6조에는 원효와 태현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1세기 후반 인주 이씨 등 문벌 가문의 후원으로 성장하였고 조선 초까지 존속하였다. 소현 당시에는 자은종이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고 유가업(瑜伽業)이라 불렀다. 1111년(예종 6)에 세운 「금산사혜덕왕사비」에서도 ‘대유가업금산사(大瑜伽業金山寺)’라고 표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자은종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최초의 용례는 1117년(예종 12)에 작성된 「최계방묘지명」에 나온다. 최계방(崔繼芳, 10451116)의 동생인 최상지가 출가하여 자은종 승통이 되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최계방의 둘째 아들인 관오(觀奧, 10961185)는 삼촌 최상지에게 출가하여 수좌에 오르고, 법천사, 수리사(修理寺)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유가(瑜伽)라는 명칭도 줄곧 보이는데, 1294년(충렬왕 20)에 죽은 혜영(惠永, 1228~1294)의 비문인 「동화사홍진국존비(桐華寺弘眞國尊碑)」에는 ‘대유가 동화사주지 오교도승통(大瑜伽桐華寺住持五敎都僧統)’이라고 하여 자은종이 아닌 유가의 명칭 그대로를 쓰고 있다.
자은종이라는 명칭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자정국존(慈淨國尊) 미수(彌授)의 「법주사자정국존비(法住寺慈淨國尊碑)」에서이다. 이 비문에는 ‘자은국일대사(慈恩國一大師)’, ‘대자은종사(大慈恩宗師)’, ‘자은교관(慈恩敎觀)’ 등의 표현이 보인다. 따라서 이 비문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종단의 이름이 자은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수는 혜영보다 20년쯤 뒤의 인물이다.
자은종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도 계속 등장한다. 1406년(태종 6) 3월의 의정부 계청(啓請)에는 불교 종파 11종 중에 자은종이 들어 있고, 그 이듬해 7종으로 축소된 종파의 이름 속에도 자은종이 보인다. 그러나 1424년(세종 6) 선종과 교종으로 종단이 통합되었을 때, 자은종은 교종 속에 포함되어 그 이름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