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본은 속장경(續藏經) 제1편 36투(套) 4책에 수록된 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신수대장경 38권에도 수록되어 있다.
원효는 이 종요를 대의(大意) · 종치(宗致) · 이장시비(二藏是非) · 삼경동이(三經同異) · 생신처소(生身處所) · 출세시절(出世時節) · 이세유무(二世有無) · 삼회증감(三會增減) · 발심구근(發心久近) · 증과전후(證果前後) 등 10문으로 나누어 해설하였다.
첫째, 대의에서는 이 『미륵상생경』을 “지인(至人)이 하늘에 오르시는 묘한 발자취요, 사람들에게 관(觀)을 수(修) 하도록 권하는 진실한 경전이다.”라고 하였고, 『미륵상생경』의 원래 제목인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타천경(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陀天經)』의 의의를 밝혀 이 경의 대의를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불설’이 무엇이며 ‘관’ · ‘미륵보살’ · ‘상생’ · ‘도솔’ · ‘천’ · ‘경’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상세하게 밝혀 이 경의 참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둘째, 종치에서는 이 경의 종(宗)이 관행인과(觀行因果)에 있고, 의치(意致)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태어나 영원히 퇴전(退轉)함이 없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관(觀)’에는 ① 하늘나라 의보(依報)의 장엄한 모습을 관하는 것과, ② 보살의 정보(正報)의 수승함을 관하는 것의 두 가지가 있다. ‘관’은 전념으로 관찰하는 일, 즉 삼매를 의미하고, 그것은 아직도 문혜(聞慧)나 사혜(思慧)이지 수혜(修慧)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행(行)’에는 ① 대자(大慈)의 이름을 듣고 마음으로 존경하여 앞서 지은 죄를 뉘우치는 것과 ② 자씨(慈氏)의 이름을 듣고, 이 이름이 표시하는 덕(德)을 우러러 받들고 믿으며, ③ 탑(塔) 주위를 쓸고 지면에 물을 뿌리고, 향(香) · 화(華)를 공양 하는 등 제사업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어, 여기에서 신라시대 미륵신앙의 구체적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원효는 계속해서 과에 언급하여, 이 '관'과 '행'이 합쳐 한 뿌리가 되어 네 가지 열매(果)를 맺게 한다고 하였다. 비유로 말하여, ① 아경이토지과(芽莖離土之果), ② 화엽음량지과(華葉陰凉之果), ③ 묘화개부지과(妙華開敷之果), ④ 방과성취지과(芳果成就之果)의 넷이라 하였다. ①은 앞에서 말한 첫 번째 행(行)으로 인하여 얻어진 결과로, 앞에서 지은 중죄(衆罪)들을 다 없애는 것이며 ②는 둘째 행의 결과로서, 삼악도(三惡道)의 변지(邊地)에 있는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며, ③은 셋째 행의 결과로, 도솔천에 태어나는 묘(妙)한 과보를 말하며, ④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관의 결과로, 무상도(無上道)에 이르러 퇴전(退轉)하지 않게 된 것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셋째, 이장시비에서는 『미륵상생경』이 소승교인 성문장(聲聞藏)이라는 설과 대승교인 보살장(菩薩藏)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 옳으냐 하는 의문에 네 가지 인증(引證)을 들어 이 경이 대승교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원효의 견해는 보살의 보응(報應)에 관한 설명이다. 그는 “보살의 의보와 정보의 장엄은 만행(萬行)으로 느끼는 실보(實報)냐, 그렇지 않으면 근기(根機)에 따라 상응하게 변화하는 상(相)이냐? 만약, 전자(前者)라면 범부의 소견이 아니니 이 보(報)는 응이 아니요, 만약 후자라면 시방(十方)에 변(遍)하지 못하니 이 응은 보가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보살의 보응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그 하나하나의 상(相)에는 다 분제(分齊)가 있다. 분제를 깨뜨리지 않고 각각 시방에 변(遍)한다. 시방의 끝에 변(遍)한 것은 범부가 못 보고, 그 분제의 끝은 범부가 본다. 분제가 곧 변이요 변이 곧 분제이며, 무장무애(無障無礙) · 무이무별(無二無別) 하다. 이와 같은 공덕은 실보(實報) 아님이 없다. 그리고 수분(隨分)으로 보이는 것, 그것이 응화 아님이 없다.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보응한다고 설하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인(因)에 만행이 갖추어지면 과에 만덕(萬德)이 원만해진다. 지금 여기서는 좁게 천(天)에서의 보응만을 말하였을 따름이다”. 이 언명은 『화엄경』의 법계무애(法界無礙)의 도리에 입각하여 정토사상을 해석하는 원효의 근본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넷째, 삼경동이에서는 『미륵상생경』 · 『미륵하생경』 · 『미륵성불경』의 미륵신앙 삼부경(三部經)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를, ① 소위(所爲, 수행면), ② 소전(所詮, 내용), ③ 소섭(所攝, 경전의 성격)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수행면으로 보아 제일 상품(上品)의 사람은 관불삼매(觀佛三昧)를 닦거나 참회행법(懺悔行法)을 행하는 사람으로, 이들은 현신(現身)에서 미륵을 볼 수 있으며, 이는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이나 『대방등다라니경(大方等陀羅尼經)』이 설하는 바이다. 그리고 중품(中品)의 사람은 관불삼매를 닦거나, 갖가지 정업(淨業)을 지음으로 인하여 죽어서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을 보고 불퇴전에 이르는데, 이것은 『미륵상생경』이 설하는 바이다. 하품(下品)의 사람은 시(施) · 계(戒) 등 여러 가지 선업(善業)을 닦고 이에 의하여 발원하고 미륵을 보고자 원하는 자들인데, 이들은 죽어서 다시 업(業)을 따라 태어났다가 미륵이 성도할 때 비로소 세존의 삼회(三會)를 보고 득도한다. 이것이 『미륵하생경』과 『미륵성불경』의 설하는 바라고 하였다. 내용면에서는 『미륵상생경』에서 밝히는 천의 보응이란 보살의 공덕이요, 다른 두 경은 인보(人報)로서의 성불 등의 상(相)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경전의 성격에 관해서는 『미륵상생경』은 보살장에 속하지만 다른 두 가지는 성문장의 것이라 하였으며, 다음과 같이 단서를 붙이고 있다. “그러나 바느질을 할 때는 짧은 바늘이 필요하다. 긴 창이 있다 하여도 소용이 없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작은 우산이 소용있지 온 하늘을 다 덮을 수 있더라도 큰 덮개 같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작다고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그 근성이 대소에 따라 다 귀중한 것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원효의 화쟁(和諍)의 이상을 잘 나타내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째, 생신처소에서는 미륵보살이 태어난 처소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 이하 끝까지는 비교적 자질구레한 숫자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원효는 일단 매우 기술적인 숫자의 이동(異同)에 관하여 그 나름대로의 치밀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근본적 해석의 원리는 여전히 화엄적인 사고방식에 의거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원효는 『미륵상생경』이 대승경인지 여부와 미륵의 모습이 과보신인지 여부를 논하고 있는데, 『미륵상생경』은 대승경이라고 단정한다. 이는 원효의 화쟁론이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진리의 선언에 그 참뜻이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