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겸(李守謙)에게 수업하다가 출가의 뜻을 품고 법천사(法泉寺)관웅(寬雄)을 찾아가 수업하였다. 관웅을 따라 상경, 개경해안사(海安寺)준광(俊光)의 제자가 되었다.
관웅에게 유식학(唯識學)을 수업하였는데, 해린은 관웅이 지어준 법호이다. 999년( 목종 2) 용흥사(龍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1001년에는 숭교사(崇敎寺)의 개창과 함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어 자운사(慈雲寺)의 법회에 참석한 뒤, 관웅이 있던 법천사로 옮겨 수업하였다. 1004년 왕륜사(王輪寺)에서 실시된 대선(大選)에 급제, 대덕(大德)이 되었다.
1011년( 현종 2) 본사인 법천사로 돌아가던 중 진조(眞肇)를 만나 역산법(曆算法)을 배웠고, 그 해에 대사(大師)가 되었다. 1021년 평양 중흥사(重興寺)에서 중대사(重大師)가 된 뒤, 수다사(水多寺)의 주지가 되었으며, 1030년 다시 개경 해안사의 주지가 되었다.
덕종 때에는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가 곧 수좌(首座)가 되었고, 1045년( 정종 11) 승통(僧統)이 되었다. 1046년( 문종 1) 궁중에 초청받아 유심묘의(唯心妙義)를 강의하고, 이듬해 이자연(李子淵)의 제5자 소현(韶顯)을 출가시켰다.
1054년 현화사(玄化寺) 주지가 되어 절을 크게 중수하고, 법상종 교단을 이끌었다. 1056년 왕사(王師)가 되고, 1058년 봉은사(奉恩寺)에서 국사에 올라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1059년 내전(內殿)에서 개최된 백고좌(百高座)의 제일 설주(說主)가 되었으며, 1067년 은퇴하여 본사인 법천사로 돌아가 머무르다가, 1070년 10월에 입적하였다.
시호는 지광(智光), 탑호(塔號)는 현묘(玄妙)이다. 정유산(鄭惟産)이 지은 비가 1085년( 선종 2)에 세워졌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현화사를 중심으로 한 법상종 교단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며, 당시의 대문벌귀족인 인주 이씨(仁州李氏) 세력과도 연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