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 조방언(趙邦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옥(趙玉)이고, 아버지는 조양정(趙揚庭)이며, 어머니는 한응성(韓應星)의 딸이다. 위한(緯韓)의 아우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학유에 제수되고 이어서 전적, 형조·호조의 좌랑, 사간원정언, 영암과 영천(榮川)의 군수 등을 역임하고,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에 임명되어 호남·영남 지방에 들끓는 도적의 무리를 토평,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예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동부승지로 전임되었다.
이 무렵 광해군의 정사가 극도로 문란하여지자 외직을 청하여 상주목사가 되었다. 인조반정 후 형조참의에 제수되고 승문원제조를 겸직하였다. 다음해 좌승지를 거쳐 선산부사가 되었다. 문무의 재능을 겸비하였으며, 특히 시부(詩賦)에 뛰어나 초한 육조(楚漢六朝)의 유법(遺法)을 터득하였다.
말년에 서도를 즐겨 종왕(鍾王: 鍾繇와 王羲之)의 글씨에 비유되었다고 한다. 권필(權韠)·이안눌(李安訥)·임숙영(任叔英) 등과 교우하였으며, 후진으로 이경석(李景奭)·오숙(吳䎘)·신천익(愼天翊) 등이 있다. 장성 추산사(秋山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현주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