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정전은 서울특별시 종묘에 있는 조선 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제사 관련 건축물이다.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광해군 원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종묘 각 신실은 한 칸으로 되어 있으며 지극히 단순하고 질박하다. 그런데 이 신실이 옆으로 19칸이 연속되면서 정전의 전체 구성은 압도적으로 장엄하다. 종묘 정전은 동시대 단일 목조건축물 중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 유교의 검소함이 깃든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종묘 정전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제사를 모시는 국가적 제례 시설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궁궐과 함께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광해군 원년(1608)에 다시 지었고, 몇 차례의 보수를 통해 현재 19칸의 건물이 되었다.
종묘 정전은 조선시대 초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목조, 익조, 도조, 환조)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 증조, 조부, 부)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다.
상하의 월대로 구성되었으며 바닥에는 박석을 깔았다. 낮은 초석과 원기둥을 세우고 각 기둥 위에는 1출목 2익공 포작을 구성하고 앞, 뒤칸에는 기둥 높이에 우물천장을 설치하였으며 안쪽은 고주 높이로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뒷면 벽체 전체는 두터운 전돌로 쌓았다. 초익공 이익공 모두 수서로 장식하고 안에서는 고주로 연결되는 퇴량을 받치는 보아지로 했다.
고주칸에 걸려 있는 대들보 위에 동자주를 세워 상중도리를 받치는 종보를 받쳐주며, 종보 중간에 파련대공을 세워서 종도리를 받쳐주는 7량구조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19칸의 정전 좌 · 우에는 2칸의 제기고 건물이 연속되어 있고, 상월대 좌 · 우 끝에는 5칸씩의 동월랑과 서월랑을 정전의 직각방향으로 배치하여 전체모양은 ㄷ자 형식을 구성하게 된다.
종묘 정전의 각 신실은 건축 구성의 기본 단위이다. 신실은 한칸으로 되어 있으므로 결국 종묘 정전은 건물 한칸 한칸이 모여서 전체를 이룬다.
한 칸의 구성을 보면 우선 평면에서 제일 뒤에 신위를 모신 감실이 있고 그 앞에 제사를 지낼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끝에 판문이 설치되어 문 밖으로 다시 퇴칸 1칸이 있다.
이처럼 정전은 단순한 구성을 한 신실이 모여 하나의 장대한 수평적인 건축 형태를 이룬다. 한편 정전의 양끝은 협실로 이어지고 동 · 서월랑이 직각으로 꺾여서 정전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그 사이에 큼직큼직한 박석들로 덮인 넓은 월대가 광대하게 펼쳐지면서 정전의 공간은 장대하면서도 엄숙하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건물과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종묘 각 신실의 건축 구성은 지극히 단순 질박하다. 이 단순 질박한 각 실이 옆으로 길게 연속되면서 종묘 정전의 전체 공간 구성은 압도적인 장엄함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다른 어떤 건축도 흉내낼 수 없는 종묘만이 갖는 건축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종묘는 동시대 단일 목조건축물 중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나, 장식적이지 않고 유교의 검소함이 깃든 건축물이다. 중국의 종묘가 9칸인데 비해 19칸의 긴 정면과 수평성이 강조된 건물 모습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건축물이며, 동양 고대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연구하는 데에 필요한 귀중한 자료가 담긴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