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나, 4점 중 상가교서와 밀부유서가 보물로 승격되면서 2017년 지정 해제되었다. 「주사선연도(舟師宣宴圖)」(필자미상, 세로 95㎝, 가로 50㎝, 비단 바탕에 담채)를 비롯하여 「당포전양승첩도(唐浦前洋勝捷圖)」(필자미상, 세로 120.5㎝, 가로 68㎝, 비단 바탕에 담채), 「상가서(賞加書)」, 「유교서(敎諭書)」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신여량(1564∼1605) 장군의 유품으로, 「주사선연도」,「당포전양승첩도」 등 여러 유물이 전한다.
「주사선연도」는 신여량이 1598년 고금도에서 왜적을 격퇴시킨 전공에 대해 선조가 어사(御使) 윤의립(尹義立)을 보내 주사(舟師: 水軍) 장군들을 위로한 연회의 광경을 그린 기록화이다. 비단 위에 먹과 옅은 채색으로 그려져 있으며, ‘舟師宣宴之圖(주사선연지도)’라는 전서체(篆署體)의 제목, 연회의 장면, 15인의 좌목(座目: 서열을 적은 목록)으로 구성된 계축(契軸)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좌목의 제4행(行)에는 신여량이 ‘절충장군 행경상우도 수군우후(折衝將軍行慶尙右道水軍虞候)’로 포함되어 있다.
「당포전양승첩도」는 같은 해 11월 당포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계축이다. 「주사선연도」와 같은 화면 구성을 가지고 있다. 좌목에는 삼도 수군통제사 이경준(李慶濬), 가선대부(嘉善大夫) 경상우도 수군우후 신여량 등 28인의 성명 관직이 쓰여 있다.
그런데 197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같은 내용의 그림인 「당포앞바다승첩지도」에는 1604년(선조 37)에 해당되는 ‘甲辰六月(갑진6월)’이라는 간지가 쓰여 있어서, 신여량 장군 유품에 포함된 이 그림은 원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을 18세기∼19세기경에 다시 본 떠 그린 모사본(模寫本)이라고 생각된다.
「상가서」는 1604년 7월 17일 전공(戰功)에 대한 상으로 신여량을 정3품 당상(堂上) 절충장군에서 종2품 가선대부로 가자(加資)한다는 내용의 교지이다. 가자된 신여량의 품직과 「당포전양승첩도」 좌목의 관직명이 일치하여 그림의 원래 제작 연대를 뒷받침한다.
1605년 12월 19일자로 쓰여진 「유교서」는 신여량이 전라우도 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로 부임할 때 압제십칠부(押第十七符)와 함께 하사받은 관직 제수에 관한 명령서이다.
신여량은 고흥 출신으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임(重任)이며 호는 봉헌(鳳軒)이다. 임진 · 정유재란때 무공을 세운 장군으로 1583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한 후 오위도총부부장을 역임하다 임란 때는 선조를 의주에 호종한 뒤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李舜臣, 1545~1598)과 합세하여 사천, 당포, 당항포 전투에 참가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의 선봉인 경상우도수군우후로 고금도, 당포, 부산 근해의 전투 등 모든 해전에 참가하여 무공을 세웠다. 1605년(선조 38)에 전라우도수군절도사에 승진되었으며 사후에는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