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예의판서, 숭경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숭경윤(崇敬尹)
관련 사건
명사살해사건(明使殺害事件)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예의판서, 숭경윤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74년(공민왕 23) 상호군(上戶軍)으로 밀직부사 정비(鄭庇)와 함께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378년(우왕 4)에는 예의판서(禮儀判書)로 공민왕의 시호와 우왕의 승습(承襲)을 청하러 명나라에 다녀왔다.

1380년에는 일찍이(1374년, 우왕 즉위) 김의(金義)가 명나라 사신을 살해한 사건을 해명하기 위하여 숭경윤(崇敬尹)으로서 계품사(啓稟使)가 되어 요동에 가서 이를 해명하였으나 체포되어 연경(燕京)에 압송, 천계사(天界寺)에 갇혔다가 이 해에 풀려나 돌아왔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