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고회 ()

목차
한문학
단체
고려 무신정권 때 이인로(李仁老)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문인들의 모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무신정권 때 이인로(李仁老)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문인들의 모임.
내용

이 시회(詩會)는 정중부(鄭仲夫)의 무신집권기에 이인로(李仁老)·임춘(林椿)·오세재(吳世才)·조통(趙通)·황보 항(皇甫沆)·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 등 일곱 문인이 구성하였다.

중국 위(魏)나라 정시연간(正始年間)에 완적(阮籍)·혜강(嵇康) 등이 구성한 죽림칠현(竹林七賢, 일명 江左七賢)에 비견하여, 이 시회를 ‘해좌칠현(海左七賢)’이라고도 한다. ‘죽림고회’라는 명칭은 최자(崔滋)의 『보한집』 발문에 보인다.

이인로는 한림원(翰林院)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고원(誥院)으로 옮겨 14년 동안 있으면서 날마다 임춘·오세재 등과 어울렸는데, 세인들이 그들의 모임을 ‘죽림고회’라 하였다고 한다.

『보한집』 발문과 『고려사』 이인로전으로 보아, 죽림고회는 이인로가 1180년(명종 10)에 급제하고 계양(桂陽) 서기(書記)로 나갔다가 들어와 직사관(直史館) 일을 맡아 한림원에 있을 때 존재하였던 듯하다.

이규보(李奎報)의 「칠현설(七賢說)」에 보면, 이들은 서로 만나 술 마시고 시 지으며 호탕하게 즐겨서 세인의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는데, 무신정권 하에서의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오세재가 죽은 뒤 이담지가 이규보에게 가입을 권하자, 이규보는 거절하면서 “칠현 가운데 찬핵(鑽核: 씨앗에 구멍을 뚫어 죽이는 행위)할 인물이 누군지 모르겠구나(未識七賢內 誰爲鑽核人).”라고 읊어 좌중이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이규보가 자신의 입장에서 고려의 해좌칠현(죽림고회)를 비판한 것으로, 『고려사』이규보전에도 실려 있다.

참고문헌

『고려조한문학연구』(서수생, 형설출판사, 1971)
『고려죽림고회연구』(이동환, 고려대학교대학원, 196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