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계최 ()

목차
관련 정보
표곡실기 권상의 권수면
표곡실기 권상의 권수면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진무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칭
언숙(彦叔)
이칭
충성군(忠城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636년(인조 14)
본관
충주(忠州)
주요 관직
서흥부사
관련 사건
이괄의 난|병자호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진무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언숙(彦叔).

1623년(인조 1) 관서행영(關西行營)의 도원수 장만(張晩)에게 의병 800명을 이끌고 가서 그 휘하에서 서로소모별장(西路召募別將)이 되었다.

이듬해 부원수 이괄(李适)이 영변에서 반란을 모의하고 그의 친구 강적(姜適)을 보내어 난에 가담할 것을 종용하였다.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강적의 목을 벤 다음 부하를 거느리고 서울로 출동하였다.

그러나 이미 난이 일어나 왕은 남행(南幸)한 뒤였다. 그는 군사를 사현(沙峴)에 주둔시켰다가 정충신(鄭忠信)·남이흥(南以興)·이수일(李守一) 등과 더불어 난군을 맞아 싸워서 적을 섬멸시켰다. 이 전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이 되고 충성군(忠城君)에 봉해졌다.

뒤에 서흥부사가 되어 많은 치적을 남겼다. 1636년 김자점(金自點)이 원수가 되고 그 휘하의 소모장(召募將)이 되었는데, 이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 군사가 쳐들어오자 서흥 검수참(劍水站)에서 맞아 싸워 수백명의 적을 베고 용전하였으나 말에서 떨어져 팔뚝이 부러졌으므로 더 싸울 수가 없었다.

부하군사를 원수에게 부속시키고 편비(褊裨) 수 명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달리다가 신계(新溪)에서 적에게 포위되자 탈출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결하였다. 뒤에 한성부판윤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고산집(鼓山集)』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