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1937년 후손 한추(瀚追)가 간행하였다. 권말에 후손 운석(運錫)·한추 등이 쓴 지(識)가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오언절구 27수, 칠언절구 56수, 오언율시 47수, 칠언율시 45수, 오언고시 5수, 칠언고시 12수, 표(表) 1편, 소(疏) 8편, 계(啓) 3편, 사(辭) 1편, 서(序) 4편, 기(記) 2편, 전(傳) 2편, 설(說) 1편, 제문 5편, 서(書) 2편, 장(狀) 3편, 권2에 부록으로 행장·행장일사(行狀逸事)·일사추록(逸事追錄)·시장(諡狀)·신도비명·신도비명음기(神道碑銘陰記) 각 1편, 제문 8편, 애사 1편, 만사 16수, 치제문(致祭文) 5편, 추향제문(追享祭文) 2편, 춘추향사문(春秋享祀文)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는 주로 통훈대부(通訓大夫)·의주부윤 등으로 있을 때 병자호란을 만나 노모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유복독자(遺腹獨子)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정을 호소하면서 어머니를 찾기 위하여 휴가를 요청한 것이다.
계 중 「계초(啓草)」에서는 공 있는 자를 포상하고 죄 있는 자를 형벌하는 것은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며 세상사람들을 권징(勸懲)하는 것이라 말하고, 상벌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훌륭한 정치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전 중 「송장군전(宋將軍傳)」은 송덕영(宋德英)이 오윤겸(吳允謙) 등의 천거로 맹산현감에 임명되어 많은 치적을 남기고, 1627년(인조 5) 금나라가 대거 침입하였을 때 막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싸우다 결국 안주에서 전사하자 그의 기개와 충절을 기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