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민(羲民), 호는 춘헌(春軒). 찬성사대제학(贊成事大提學) 최비일(崔毗一)의 손자이며, 최성지(崔誠之)의 아들이다.
일찍이 원나라에 가서 숙위(宿衛)하여, 몽골의 말과 글에 능통하였다. 1320년(충숙왕 7) 충선왕이 티베트[吐蕃: 西藏]에 유배되었을 때 아버지와 함께 다녀왔으며, 귀국 후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그 뒤 사신으로 평양과 쌍성(雙城)에 주재하였고, 1344년(충목왕 즉위년)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첨의참리(僉議參理)에 이르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호는 양경(良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