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4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 부록 등이 없어 편집·간행경위를 알 수 없다. 권두에 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가 1681년(숙종 7)과 1682년에 각각 쓴 서문이 있는데, 이것은 총집의 서문은 아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수를 나누지 않고 원(元)·형(亨)·이(利)·정(貞)으로 나누어 4권 4책으로 만들었는데, 원·형의 두권은 시 630수, 이권은 소차(疏箚) 43편, 정권은 계사(啓辭) 6편, 서(書) 16편, 서(序)·기(記) 6편, 제문 15편, 가장·묘지명 각 1편, 책문 7편, 잡저 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재헌부응지소(在憲府應旨疏)」는 대본(大本)을 세울 것, 언로를 열 것, 기미(幾微)를 잘 살필 것 등 3대 강령으로 임금에게 권고한 상소로서, 매우 조리 있고 요령 있는 글이다.
수원에 부임한 뒤 당시의 폐단을 진언한 소에서는 군민(軍民)에게 겹으로 부가되는 노역과 편중된 양결(量結)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밖에 「진기소회소(賑飢所懷疏)」·「대마도주평의성부자추송예단물수연명소(對馬島主平義成父子追送禮單勿受聯名疏)」 등 당시 정치·사회문제에 참고될 만한 글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