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석 ()

한문학
작품
조선 중기에 권필(權韠)이 지은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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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권필(權韠)이 지은 한시.
구성 및 형식

오언과 칠언의 잡언체(雜言體)로 모두 24구이며 『석주집(石洲集)』 권2에 수록되어 전한다.

내용

백거이(白居易)의 신악부(新樂府)인 「청석(靑石)」을 본받은 것이다. 당시 세도가들이 신도비를 만드느라 노역하는 백성과 무자비하게 깎여 지는 돌을 통해 권세가의 욕심을 풍자한 시이다.

백거이의 「청석」은 작가가 남전산(藍田山) 산출의 청석을 대신하여 말하는 수법을 이용하였다. 안진경(顔眞卿) 단수실(段秀實) 등의 충렬(忠烈)을 들어 세인과 대비시켜 세인의 충렬심을 진작하려 한 것이다.

이에 비하여 「충주석」은 전고를 사용하지 않고 평이한 시어만을 사용하여 객관 사실을 기술함으로써 세태를 풍자한 특징이 있다. 「충주석」은 조선 중기의 사대부들이 충주에서 미석을 가져다 신도비를 만드는 습속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충주석」은 경제(經濟)의 실제 공적이 없으면서 허명만 숭상하는 권귀(權貴 : 권력이 있고 귀함.)들을 비판한 내용이다.

「충주석」 제 1∼5구에서는 우선 충주석을 빗돌로 다듬어 실어나르는 상황을 묘사하였다., 제 6구에서 세태에 아부하는 문장가들을 비판하였다. 제 9∼18구에서 오언구를 이용하여 신도비문의 상투어를 예시하였다.

「충주석」은 제 19∼24구에서 그 비문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 말을 믿든 안 믿든 남들이 알든 모르든/충주 산 바위를 날로 달로 깎아내어 남은 게 없네/이 무딘 것 생겨날 때 입 없는 게 다행/돌이 입 있다면 응당 할 말 있으리(此語信不信 他人知不知 遂令忠州山上石 日銷月鑠今無遺 天生頑物幸無口 使石有口應有辭).” 제 23^24구는 백거이의 「청석」에서 “돌이 말 못하니 내가 대신 하리라(石不能言我代言).”고 한 구절을 바꾸어 쓴 것이다.

의의와 평가

김득신(金得臣)은 『종남총지(終南叢志)』에서 「충주석」을 “극히 뛰어나다(絶佳)”고 평하였다.

참고문헌

「권필(權韠)의 풍자시에 대한 소고(小考)」(허권수, 『경상대학교논문집』 23,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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