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93㎝, 불상 높이 43㎝. 큰 편은 아니지만 광배(光背)와 대좌를 겸비한 불상이다. 조각술이 정교하고 불신의 비례도 훌륭하다.
불상의 왼편에는, ‘태평 2년에 고석불을 중수한다.’는 내용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태평 2년은 송 태종 때의 연호로 977년이다. 이 불상에는 새로 조각을 가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불상을 보호하는 전각이나 부속된 건물의 부재 등을 새로 고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 불상의 제작 연대는 950년 이전일 것으로 짐작된다.
머리의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는 작은 편이며, 미소를 띤 얼굴은 약간 통통하고 단정한 모습이다. 체구는 장대하고, 우견편단(右肩偏袒: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으로 걸친 가사는 왼쪽 가슴에서 접혀져 있다.
광배는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이 각각 삼중원으로 이루어졌다. 삼중원 주위에는 화염문(火焰文: 불꽃무늬)으로 둘려져 있다. 대좌는 복판(複瓣: 겹잎)의 앙련좌(仰蓮座)를 이중의 대석이 받치고 중대에는 네 개의 모서리 기둥[隅柱]이 있다. 그 아래 다시 이중의 대석과 단판의 복련좌(覆蓮座)가 새겨져 있다.
불상의 가사 표현은 적조사 철조여래좌상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철조여래상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대좌는 광주(光州) 약사암 석조여래좌상과 같은 원각상의 팔각연화대좌를 부조(浮彫)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조각의 각명한 선이나 유려한 융기선의 옷주름 등 고려 초의 희귀한 편년 자료로서, 한국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불상이 모셔져 있던 절은 알 수 없으나 근처에 넓은 절터가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사찰일 수 있다. 또한 지형으로 미루어보아 『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약정사(藥井寺)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