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서체철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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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조선후기 제23대 순조 연간에 민간이 주조하여 상업적으로 사용한 철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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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제23대 순조 연간에 민간이 주조하여 상업적으로 사용한 철활자.
내용

사자원(寫字員)의 서체를 바탕으로 주조한 것으로, 누가 언제 처음으로 만들었는지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활자명을 정식으로 붙이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글자체와 재료에 의해 ‘필서체철활자’, 그 활자로 찍은 책을 ‘필서체철활자판’ 또는 ‘필서체철활자본’으로 부른다.

이 활자는 순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주로 민간의 문집·족보·실기·방목 및 일용제서(日用諸書)를 찍어 내는 데 이용되었다. 그 인본 중 1837년(헌종 3) 인출(印出)의 ≪의회당충의집 義會堂忠義集≫에는 ‘崇禎紀元後四丁酉孟夏校書館活印(숭정기원후4정유맹하교서관활인)’의 인기(印記)만 철활자가 아닌 목활자로 찍혀진 것이 있다. 이것은 소유자 또는 소장자가 뒤에 추인(追印)한 것임을 여실히 시사해 준다.

그리고 1859년(철종 10) 인출의 ≪동래정씨파보 東萊鄭氏波譜≫의 후록(後錄)을 보면 ‘活字主人白琦煥(활자주인 백기환)’의 표시가 있고, 그가 정기증(鄭基曾)의 집에 가서 족보를 찍을 때 주인으로 택자인(擇字人)의 구실을 했음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활자주인이 백기환이란 민간인이었음을 실증해 주는 자료인 점에서 주목케 한다.

이 활자는 그 뒤 ≪선원속보 璿源續譜≫의 인출에도 사용되었는데 그 인본이 고종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조선 말에 이르러서는 궁내부가 그 활자를 사들였거나 세를 내어 쓰다가 나라의 주권을 잃게 되자 총독부로 그대로 인계된 듯,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민간에서는 이 활자와 닮은 필서체 목활자를 만들어 일제강점기까지 족보와 문집 등을 찍어 주고 삯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철활자와 혼돈하고 그 일부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1930년대까지 계속 인쇄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여기는 이가 있다.

그 예로서 1916년 당시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延禧面) 연희리 이세현(李世鉉)이 인쇄한 ≪한양조씨세보 漢陽趙氏世譜≫를 들었는데, 그 책의 형태를 살펴보면 닮게 만든 필서체 목활자를 사용하고 세자(細字)에는 신연활자를 혼용하여 찍어냈음이 역력하다.

참고문헌

『한국고인쇄기술사』(김두종, 탐구당, 1974)
『조선후기활자연구』(윤병태, 연세대학교대학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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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활자본의 형태서지학적연구」 하(백린, 『한국사연구』 4, 1969)
「충의집전(忠義集傳)과 교서관주자인본(校書館鑄字印本)들」(윤병태, 『도협월보』 14-10, 1973)
집필자
권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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