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데라’라고도 불렸다. 이 절은 백제계통의 이주민인 가와치무라치[河內連]라는 씨족이 이 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위하여 건립한 사찰이다. 그러므로 일종의 씨족사찰인 셈이다.
가와치무라치는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의하면 백제의 도모왕(都慕王)의 아들인 음태귀수왕(陰太貴首王)의 후예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절은 가와치무라치를 대표로 하는 백제인들에 의하여 세워졌음에 틀림없다. 이 절의 창건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1967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 발굴조사로 인하여 강당(講堂)과 회랑(回廊)이 있던 자리에서 그 기단(基壇)과 초석(礎石)이 출토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 사찰이 사천왕사식(四天王寺式)으로 건물을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고, 또 그 때 출토된 기와들이 고구려양식과 동일한 나라시대[奈良時代] 전기의 것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적어도 이 절의 건립은 나라시대에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으나, 현재 그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